나는 현재 40일 넘게 공립 초등학교 안에 있는 특수학급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다. 내가 실습을 하고 있는 반은 중증 발달장애 학생들이 있는 반으로 나이때가 유치원생부터 3학년까지이다. 그야말로 특수교육계에서는 되도록이면 맡고 싶지 않는 어찌 보면 최고봉 난이도의 반이라 할 수도 있겠다.
교사의 입장에서 힘든 것으로 치자면 '품행장애'나 다른 중증 장애 학생들이 있는 학급의 사람들도 저마다 힘들다고 외치겠지만 내가 실습을 하고 있는 학급이 특별히 힘들다고 여겨지는 것은 학생들이 어리기 때문이다. 일반 학생들도 유치원 나이때의 아이들은 다루기가 조심스럽고 "이성"이라는 것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에 힘이 드는데 하물며 어린 발달 장애 학생들이야 어떠하리요.
교생으로서의 하루 일과는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을 맞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비교적 이른 아침인 7시 25분에 학생들을 맞이한다. 어떤 아이들은 새벽 6시 30분쯤에 스쿨버스를 타기도 한다. 아이들이 다 내리면 이들을 데리고 학교 놀이터로 향한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벨이 울리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우선 같은 학년 일반 학급에 가서 아침 조회를 함께 한다. 담임 선생님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장애 학생들은 그 학급의 환영 받는 스타가 될 수도 있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도 있다.
일반 학급의 학생들이 아침 조회를 마치고 본격적인 학업에 돌입하면 장애 학생들은 "아지트"라고도 할 수 있는 특수학급 교실로 와서 공부도 하고,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 내가 있는 특수학급은 중증 발달 장애 즉 매순간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 위주로 편성된 학급이기에 풀타임 보조 교사가 2명, 하프타임 보조교사가 1명, 시시때때로 도움을 주는 보조교사가 1명 이렇게 담임특수교사까지 평균 5명의 성인이 교실에 상주한다. 학생은 모두 8명인데 말이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교사 대 학생 비율인 듯 하고 보조인력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평상시에는 이런 생각이 가능하지만 일단 사건이 터지게 되면 그 사건으로 인한 체인 리엑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탄이 터지기에 이 정도의 인력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사건이 있었던 날은 유난히 아이들이 심드렁하고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연휴 다음날이나 금요일 오후 또는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보름달이 뜨는 주간은 아이들의 감정이 널뛰기를 한다고 전한다. 그날 메리는 학교에 지각을 했다. 까칠한 메리가 지각을 하면 선생님들이 모두 긴장을 한다. 메리는 한 번 비위가 꼬이게 되면 무엇이든 거부하고 퇴자를 놓기 때문이다. 아니다 다를까 아침부터 메리는 바닥을 구르며 하이톤 소프라노로 소리를 질렀다. 메리가 소리를 지르는 통에 자폐증인 톰은 신경질적으로 해드폰을 찾아 썼고, 다운 증후근 벤은 메리를 노려 보았다. 메리의 괴성이 30분을 넘자 선생님들이 메리를 데리고 옆방으로 가서 달래기도 하고 말로 혼내기도 하면서 진정시키려 애썼다. 메리가 소리를 지를 때면 혹시 물건을 던지거나 주변 친구들을 때릴까 염려되어 선생님들이 메리 주변에 진을 친다. 그 통에 침대에 누워있는 캔과 에이미에게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와중에서도 8명의 화장실 스케줄에 따라 시시때때로 아이들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야 한다. 메리가 간신히 진정을 하고 선생님들이 숨을 돌리며 긴장을 풀고 있는 틈을 타서 꼬마 알렉스가 교실을 탈출하여 복도를 방황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흐르는 순간이었다. 선생님들은 교실을 뛰쳐나가 사방팔방으로 찾아 헤맨 끝에 꼬마 알렉스를 찾았고, 그 때부터 문 앞에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선생님들이 보초를 서며 앉아 있었다. 이 일이 마무리 될 즈음에 아까부터 메리를 주목하여 노려보고 있었던 벤은 미술수업을 가다가 갑자기 메리의 머리카락을 양 손으로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아직 2학년인 벤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3명의 선생님들이 달라 붙어 벤의 손에서 메리의 머리채를 빼려고 애썼지만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선생님들의 힘쓰는 소리, 머리채를 잡힌 메리의 비명소리, 벤의 적대적인 숨소리가 얽히고 설키여 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이 와중에서도 선생님들은 꼬마 알렉스가 도망가지 않도록,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아이들이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눈동자를 이리저리 회전하며 멀티 테스킹을 해야 했다. 옆 반 특수교사까지 뛰어와 간신히 벤의 손아귀에서 메리의 머리카락을 빼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신기하게도 집에 갈 때 쯤에는 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 태평하게 스쿨버스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런 일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일어난다. 그런데 언제 일어날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나와 선생님들은 항상 정신무장을 하고 비장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한다.
어떤 날은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유쾌한 하루가 흘러간다. 그러다가 한번씩 이렇게 폭탄 터지듯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감사하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 교실의 친구들 중 대부분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일반 공립 초등학교에서 생활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비록 일주일에 한번씩 아수라장을 경험하지만 일반 친구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스쿨버스를 타고 "교실"에 들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 축복이라기 보다는 당연한 권리로 존중받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대한민국에서도 하루 빨리 모든 중증 장애 어린이들이 동네의 공립학교에서 떳떳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남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보다는 부족함을 온전함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의 분위기가 만들어 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