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돼지해라고 한다.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2018년을 돌아보니 개인적으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페이스 북'과 '코리아 포스트'라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지면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어 기쁜 한 해 였다.
나의 길었던 교생실습도 작년 12월 20일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처음 시작 할 때는 영어가 부족하고 나이도 많은 내가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두려움과 부담감이 많이 있었는데, 다행히 친절한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 덕에 무사히 끝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해에는 교단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동네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에서 특수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미국 지구인들 틈에서 교생실습을 하며 새롭게 알게 되거나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에서는 특수교육 안에 영재교육, 특수교육 그리고 ESL 교육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주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아리조나에서는 각 교육청의 특수교육분과 최고 담당자는 이 세 분야를 총 책임지고 계획한다. 영재교육이 특수교육의 한 분야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ESL 교육이 특수교육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서구 문화가 언어 중심 문화라서인지 말을 잘 하지 못하면 특수교육 대상자가 된다는 암시를 주는 것 같아 묘한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교육청에 교육을 실질적으로 뒷받침 해 주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행동수정 전문가, 교육청 소속 양호교사, 아메리칸 인디언 담당 장학관(?),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전문가, 교육 과정 전문가 등등이 있어서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감독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지나치게 반항적인 학생이 있어 담임 교사가 훈육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교육청에서 행동수정 전문가가 나와서 교사와 함께 학생을 훈육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또 교육청에서 컴퓨터 분야 전문가가 나와서 특수학급에서 사용하는 여러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새로운 첨단 기기들의 사용법을 교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교육청에서 장학관들이 오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보다는 형식적인 수업 참관을 하거나 아니면 행정 문서들을 감독하는 일을 주로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이곳에서는 각 학교의 교사들과 행정가들이 교육청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세번째로 미국 지구인들이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리조나에 수십년 살면서도 아직 한번도 한국 식당이나 마켓, 심지어 중국 마켓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미국 지구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 나도 한국에서 지낼 때, 미국이나 서부 유럽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시아에 대해 또는 한국에 대해 누구나 이 정도는 알겠지 하는 생각을 아예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사람들을 대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네 번째로 미국 지구인들은 직장 동료 관계에서는 매우 간접적인 화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좀 마음에 안 들거나 싫어하는 점이 동료에게서 발견되더라도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아예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동료의 옷차림, 생활습관 등 개인적인 스타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듯 했다.
한국에서라면 동료 사이에 자연스럽게 오고 갈 "옷차림이 왜 그래?" "요즘 살찐 것 같아." "책상 정리 좀 해라, 교실에 너무 지저분해." "너 그 옷 얼마 주고 샀니?" 등등의 대화는 실습기간 중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싫은 소리를 자제하는 것이 무관심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교장 선생님이나 리더쉽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냉정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며 주도 면밀하게 일의 성과를 체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무더운 여름날, 발가락이 드러나는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어느 보조 교사에게 교장선생님의 무서운 이메일이 날라 왔다 거나, 레깅스를 즐겨 입는 선생님에게 역시 교장 선생님의 경고 이메일이 왔다는 소문은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는 미국 지구인들의 눈초리를 엿보게 하였다.
다섯 번째로 미국 지구인들은 공중위생과 안전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우선 학생이건 교사이건 상관 없이 감기나 기타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학교에 나오는 것 보다는 집에 있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프더라도 학교에 출근하여 할 일을 끝까지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는데, 이곳 미국 지구인들은 이러한 희생은 괜히 출근하여 감기 바이러스를 학교에 퍼뜨리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6년 개근을 대단히 성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해열제 또는 기타 약을 먹지 않고 24시간동안 열이 나지 않아야 학교에 등교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깨달은 점은 열정과 진심은 피부색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게 한다는 것이다. 한 학생을 놓고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 함께 고민하던 순간에는 내 옆에 있는 지구인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아니면 남미인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본질에 집중하다 보니, 그 이외의 것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낯선 지구인들과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 안에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2019년에 미국 지구인들 사이로 뛰어들거나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지구인들이 있다면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기 바란다.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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