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가 살고 있는 아리조나가 미국 뇌성마비 협회(United Cerebral Palsy)에서 2015년에 발표한 장애인이 가장 살기 좋은 주 1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막의 도시, 황량하고 모래바람으로 뿌옇기만 한 이 땅이, 알고 보니 장애인이 살기 편한 선진적인 장소였다니 참 기쁘다. 이런 선진적인 곳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것이 영광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쩐지 내가 교생실습을 하고 있는 교실에 왜 이렇게 보조 교사가 많고 다양한 치료사들이 들락날락 거리는가 했더니, 아리조나가 친장애인 주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앞선 도시에서도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교육정보를 잘 몰라 헤매는 엄마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낯설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아리조나에서 눈치 없는 옆집 한인 아줌마에게 "얘가 왜 이렇게 말이 느려요?" 또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없는 모습이 좀 이상하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엄마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밖이 너무 더워서 하루 종일 엄마랑 집에만 있어서 일 거야.' 또는 '남자아이들은 원래 말이 늦어. 말이 늦게 트이는 아이들도 많아.'라고 마음을 다독여 보지만 뭔가 전문가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진다.
이럴 경우에는 우선 인터넷으로 발달 체크리스트 표를 찾아 내 아이가 발달 체크표에 나와있는 행동과 동작들을 할 수 있는지를 체크해 봐야 한다. 체크 리스트를 보아도 헷갈리며 뭔가 마음이 꺼림직하고 찜찜하다면 지역에 있는 진단평가 기관(Arizona Early Intervention Program)에 인터넷이나 전화로 진단검사를 신청하여 연락을 기다리면 된다.
비용 때문에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검사와 진단, 그리고 이후에 있을 교육 및 치료가 모두 무료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애학생과 일반 학생이 통합으로 교육받는 프리 스쿨에 입학을 시켜주기도 한다. 아이가 의료보험이 있어 편하게 소아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정기검진 때 의사에게 물어 보아도 된다.
그런데 진단평가 기관에서 진단을 받게 되면 그 이후의 후속 조치들, 예를 들면 각종 치료나 유치원 진학 등도 한꺼번에 해결이 되므로 진단평가 기관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 진단서가 있다면, 진단평가 기관에서 진단검사를 면제받고 바로 교육을 처방 받을 수도 있을 듯 하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가 ADHD나 정서 장애 등이 의심된다면 더 간단히 확인해 볼 수 있다. 바로 학교 선생님께 진단검사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학교에 있는 심리상담교사 (School Psychologist )의 관할 아래 의심되는 장애를 검사하게 된다. 검사 결과 ADHD나 또는 정서장애, 학습 장애 등의 장애가 있고 그 장애 때문에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판명이 나면, 학교에서는 그 때부터 '개별화 교육 계획안(Individual Educational Plan)'이라는 것을 작성하여 어떤 목표로 어떤 특수교육을 제공할 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모든 교육과 치료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 때 학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개별화 교육 계획안'은 공식적인 법적인 문서로, 모든 특수교육과 관련된 혜택이나 교육은 이 문서에 기록되어 있어야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모든 계획은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얻게 되어 있고, 부모에게는 동의를 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권한이 있다. 개별화 교육 계획안을 세우기 위해 학교에서는 특수교사, 담임교사, 심리 상담교사, 치료사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모여 세세한 사항들을 놓고 의논하고 이 자리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문서화 한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학생 본인도 개별화 교육 계획안 회의 때 참석하여 자기가 받을 교육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것을 권하고 있다.
교생실습을 하며 개별화 교육 계획안 회의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 참석할 때마다 한국의 학교 문화와 달라 여러 번 놀란다. 개별화 교육 계획안 회의에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참석해서 놀랐다. 참석한 선생님들의 전문성과 진지함에 놀랐고,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도 기가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녀의 권리는 주장하는 미국 엄마들의 용감함에 또 한번 놀랐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할 때 느꼈던 특수교육은 '베푸는 자'와 '은혜를 입은 자'의 느낌이었는데, 이곳 아리조나에서 느낀 특수교육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 와 '마땅한 권리는 누리는 자'의 느낌이다. 아주 옛날, 한국에서 교사생활을 했을 때, 학교에 다니는 장애 학생들을 보며 '아, 이렇게 좋은 학교에 다니니 저 아이들은 얼마나 복 받았는가, 정말 은혜구나.'라고 잠시라도 생각했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장애 학생들이 일반 학교에 다니며 온전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를 받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한국 아줌마들도 주눅들지 말고 자녀에게 특수교육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개별화 교육 계획안 회의에 가서 당당하게 요구하기 바란다.
* 연령별 발달 체크 리스트 :
https://www.cdc.gov/ncbddd/actearly/milestones/index.html
미국 질병관리본부(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발달체크표로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있다. 우리말로는 '행동발달표'라고도 한다.
* Arizona Early Intervention Program :
https://des.az.gov/services/disabilities/developmental-infant
학령기 이전의 유아들의 발달장애를 빨리 발견하여 치료하고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다. 발달장애나 자폐증등의 경우, 유아기에 빨리 발견하여 조기에 교육을 받으면 이후의 학교생활이나 사회적응이 훨씬 수월하고 효과적이기에 되도록 빨리 진단을 받고 교육을 받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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