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종종 듣습니다.
양희은 씨가 직접 지은 노랫말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아 몇 번씩 반복하여 듣곤 하죠.
이런 노랫말입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중략)
목회를 정식으로 시작하고 5-6년 정도 지났을 때 함께 하던 교우들 여러 가정이 떠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변 선후배 목사님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며 '나에게는 없을 거야'라고 은근히 자만해 하던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 두 세 번 큰 결별이 더 있었고, 한 가정 또는 두 가정씩 떠나는 작은 결별은 거의 매 년 주기적으로 있어왔습니다.
'나를 떠나는 사람이 있구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맴돌 때…….
여럿이 떠나든 청년 한 명이 떠나든 저에게는 언제나 똑 같은 아픔이었고 똑 같은 상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더 심금을 울리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서 주인공 최서희 집안에 노비로 들어와 나중에는 최서희의 남편이 되는 김길상이 윤씨부인(최서희의 할머니)을 회상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어른(윤씨 부인)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우러러 뵙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나에게 글을 배우게 하시고 …… 어릴 적에는 나는 그것을 크나큰 은혜로 알았지요. 그러나 그건 정(情)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정 말입니다. 상전이 하인에게 베푸는 은혜,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어른은 웃으신 일이 없었지만 웃음보다 더 정을 느끼게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중략) 아무리 남에게 좋게 보여도 정이 없는 자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네, 거짓말쟁이입니다. 가증한 거짓말쟁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그건 거짓말쟁입니다."
목사에게 필수 조건은 사랑이라 합니다.
사랑 없는 목사는 직업으로 목회 일을 하는 것이라 공격하는 사람도 있고 …….
그런데 정(情) 없이 사랑이 가능할까요?
'목사는 교인들에게 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신학교에서 들었고 선배 목사님들로부터도 뇌리에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정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목회하는 내내 저를 괴롭히는 문제가 '정 없이 참된 사랑이 가능할까?'입니다.
'정 없는 사랑은 가짜 사랑이고, 아무리 좋게 보인다 해도 가증스런 사랑으로만 여겨질 텐데' 하면서요.
이 문제로 갈등하고 실수하고 상처 받고, 그러나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저를 아프게 하곤 합니다.
목회자의 사랑은 나무 심기와 같다고 합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 간격이 너무 가까우면 서로 부딪치며 부러지고 엉키고 상처를 입힙니다.
아리조나와 같은 곳에서는 심지어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목사와 교우들 사이의 사랑은 그렇게 적당한 간격을 둔 나무 심기와 같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다른 법, 특히 사모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입니다.
가까우면 결국 상처로 돌아오고, 멀면 정이 없다고, 가식적이라고 흠 잡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많아 결국 상처로 돌아오고 미움과 원한이 쌓이고 맙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 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종이와 연필의 질이 좋지 않아 종이 밑에는 받침을 대고 연필에는 침을 발라 글씨를 썼었죠.
그때 안 받침, 증오가 마치 그 안 받침과 같아서, 증오의 안 받침 없는 사랑의 이야기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목사도 한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증오의 안 받침을 밑에 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내하고 참지만 내면에 증오의 응어리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하라고 설교하지만, 때로 얼굴에 드러나고 스쳐가는 말 한 마디에 밑에 숨겨 있던 증오의 안 받침이 들통나고 맙니다.
양희은이 부르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이렇게 끝납니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 이 세상도 끝나고 /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 그 빛을 잃어버려 //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