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나이 마흔살이 넘어서 뒤늦게 특수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그 공부도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일년 넘게, 석고와 같이 굳어버린 머리로 공부하며 맺은 열매는 옆구리의 살, 두꺼운 팔다리, 엉망진창 집안살림 그리고 특수교육에 대한 놀라움입니다.
저는 지난 일년간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러 종류의 특수학급을 방문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지구인들을 인터뷰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고요? 그게 숙제였어요. 더듬거리는 영어로 학교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인터뷰와 참관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답니다.
처음 만난 지구인은 산타클로스와 싱크로율 100%인 School Psychologist였습니다. School Psychologist란 각 학교마다 있는 심리상담선생님(?) 입니다. 이 분이 하는 역할은 각종 진단평가, 예를 들면, 아이큐 테스트, 심리 상담 검사, 기초 학력 능력 평가 등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일, 학생에게 행동이나 정서에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정하는 위원회에 전문가로서 참석하는 일, 정신과적인 상담을 한 후, 학교 외부 기관과 학생을 연결시켜 주는 일 등을 하십니다. 참고로 각종 심리검사, 아이큐 테스트 등의 검사는 반드시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가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 공립학교마다 School Psychologist 가 있으며, 대부분 석,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공부를 많이 하신 지구인들입니다.
저의 첫 인터뷰 상대로 만나게 된 싼타클로스 School Psychologist 지구인(이하 싼타클로스)은 베테랑 지구인이였습니다. 제가 바보스럽게 질문을 하였는데도 저의 심중을 꽤뚫고 레포트를 최상으로 쓸 수 있게끔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사회 경제적 계층에 상관없이 행동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비율이 학교마다 비슷하다고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못 사는 동네의 학교나 부자들이 사는 동네의 학교나 문제아들은 비슷한 비율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처음 이 말을 듣는 순간 "진짜?"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는데, 이것은 아마 '문제아'를 보는 시각이 전문가 지구인과 비전문가인 제가 달라서 인 것 같습니다. 싼타클로스 지구인이 말하는 행동장애 학생은 병적으로 반항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만을 지칭하는 것이고 제가 생각하는 행동장애 학생은 모든 문제아들을 통틀어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싼타클로스는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마음이 속상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문제아'로 생각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지구인은 'Speech Therapist' 입니다. 'Speech Therapist'는 한국말로 '언어치료사'라고 합니다. 주로 음성언어를 교정해 주거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지구인입니다. 저에게 각 연령별로 꼭 발음 할 수 있어야 하는 발음기호표들을 보여주며 미소 지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표를 보며 "앗, 나는 아직도 /th/,/l/, /r/, /Z/ 발음이 제대로 안 되는데, 언어장애로 판정 받는 거 아니야?" 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생각이 납니다. 한국어에도 이러한 연령별 발음표가 있는가 궁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영어교육학이 세분화 되어 있고 발달되어 있어 말하기 듣기를 상당히 신경 쓰며 교육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Behavioral Interventionist(행동교정 전문가)라는 생소한 직분의 지구인도 만났습니다. 각 학교를 순회하며 담임 선생님들 또는 특수교사에게 문제아들을 다루는 법을 코치해 주시는 지구인입니다. 가령 우리 반에 말숙이가 너무나 말을 안 듣고,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떠들며 친구들을 방해한다고 하면, 하루 날을 잡아 행동교정 선생님이 교육청에서 나오셔서 말숙이를 관찰하시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어떻게 하면 말숙이가 얌전히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우고 처방을 내리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아수라장 교실에도 정말 필요한 지구인입니다. 특히 초보 선생님들에게 말이죠. 제가 교단에 있었을 때, 이 지구인을 만났다면, 날마다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폭식을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던 경험을 줄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보조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특수학급에 가면 학생들의 장애 정도에 따라 보조 선생님들이 곁에 계십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리조나 피닉스의 K 교육구는 장애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학급을 편성한 듯 합니다. 그래서 신체 장애(뇌성마비, 전신마비, 간질)가 있거나 심한 자폐 성향이 있는 학생들로 구성된 특수학급에 가면 거의 일대일로 보조교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특수 학급에 갔을 때에는 학생들이 한 덩치 하고, 행동반경이 커서인지, 풋볼선수 같은 남자 보조 교사가 계셨습니다. 한번은 기골이 장대한 특수학급 학생이 교실 문지방에 대자로 누워서는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학생들과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여자 선생님이 아무리 이러쿵 저러쿵 달래고 얼러도 그 학생은 막무가내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풋볼선수 남자 보조 교사가 와서 뭐락 뭐락 몇마디 하자 모두를 열 받게 하던 그 학생은 초스피드로 일어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교실로 들어가는 길을 터 주었습니다. 덩치의 위력이라고나 할까요?
미국에서의 특수교육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협력해서 이루어 나가는 교육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수교사를 리더로 보조교사, 심리 상담사, 각종 치료사 선생님, 학생 본인 그리고 힉부모가 함께 만들어 가는 모양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수교육 현장에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습니다. 저는 고작해야 담임선생님, 특수교육 선생님 정도가 학교의 특수학급에 관여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의 특수교육은 정말 퍼즐 조각 맞추듯이 다양한 치료사들과 선생님들이 서로 마음과 생각을 맞추어 가며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