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구절은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어느 위대한 분께서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나 미국 특수교육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슴에 팍 와 닿는 문구입니다.
미국 특수교육의 역사는 짧고 굵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미국 특수교육의 역사가 1960년대부터 불 붙었던 시민운동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불평등', '청소년 범죄', '난민 어린이', '정신병'등의 문제들까지 다루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특수교사는 이 문제들도 다룹니다.
1954년, 대법원에서 흑백 분리 학교는 위법임을 판결 내리는 것을 촉매제로 장애를 지닌 학생들도 일반 공립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특수교육의 발전은 학부모들과 장애인 관련 단체들의 수많은 소송과 법정 판결로 조금씩 길을 열어 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국 특수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법은 '장애인 교육법(Th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 Amendments of 2004' 이하 IDEA)'입니다. 이 법을 근거로 특수교육 대상자로 진단된 모든 학생은 공공의 기금으로 적합한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권리를 보장 받습니다.
특수교육 대상자는 모두 개별화된 교육 프로그램 계획안을 부모의 추가 비용 없이 제공 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 계획안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됩니다. 정말 꿈 같은 이야기 입니다. 제가 관찰한 미국의 특수학급은 '적정기술의 천국', '무상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였습니다.
동네 공립 초등학교 특수학급을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뇌병변 및 전신마비, 자폐증, 다운 증후군, 알 수 없는 장애 등등 약 9명의 학생이 한 학급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 1명, 붙박이 보조교사 3명이 기본으로 학급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참관을 갔던 날은 행동수정 코치(Behavioral Coach)가 교육청에서 나와서 학생들의 행동을 어떻게 코치 할지 조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수업 중간 중간에 언어 치료사 선생님, 감각통합치료 선생님이 오셔서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지도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눈길을 끈 것은 다양한 기능의 휠체어였습니다.
뇌병변 및 전신마비를 지닌 친구는 시간시간마다 휠체어의 종류를 바꾸어 앉혀주고, 이동식 받침대에 붙잡아 매어 서 있는 자세를 취해 주고 교실 안에 있는 커다란 침대에 엎드려 눕혀 놓기도 하였습니다. 벽에 체크 리스트가 있어서 각종 휠체어에 한번씩 앉혔는지를 체크 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담임 교사가 한, 두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할 때에 나머지 학생들은 보조 교사와 함께 아이패드로 각자 수준에 맞는 학습 프로그램을 하거나 게임 등을 하였습니다. 1인 1 아이패드라니…… 예전에 한국에서 제가 가르쳤던 장애 학생들에게 이런 도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면서 몹시 샘이 났습니다.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특수교사께서 이제 곧 뇌병변을 앓고 있는 학생을 위해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eye gaze technology 기계를 들여 올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상으로 말입니다.
교육이 낙후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한 아리조나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이러한 특수교육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선한 의도를 넘어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특수 교사들의 끈질긴 주장과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실제로 교육현장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지속적인 관찰과 참여가 아니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문장은 학교에서 무의식적으로 악의 없이 이루어지는 불평등에 관한 사례글에서 나온 문구였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2년 미국 어느 도시의 교육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교육구에서는 영재반을 편성할 때,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로 한 반을 그리고 스페인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학생들로 한 반을 편성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나쁜 뜻에서가 아니라 영재반의 어려운 내용을 아무래도 학생들이 알아듣기 쉬운 모국어로 교육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어 사용반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소송을 하여 법원에서 모국어에 상관없이 영재 학급을 편성할 것을 판결 내렸습니다.
영어가 서툰 학생들을 위해서는 따로 통역관을 배치 할 지언정 분리하여 교육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판사는 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요?
처음 시작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인종별로 분리된 학급이 계속 지속될 경우, 교육 자료가 불평등하게 배분될 수도 있고 교육 내용의 수준이나 질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페인어 사용 학생들의 학부모님들이 교육청의 선한 의도에 만족하고 소송을 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영재 학급은 인종별로 편성되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겠죠.
특수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일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선한 결과로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선한 의도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