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정규는 그날 이후로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족 초청을 마무리 지 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미국 땅으로 불러 들여 재결합할 수 있었다. 다 깨어졌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가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정규의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뉴욕에서 행복하게 살며 교회의 귀한 일꾼으로 사역을 감당하면서 은혜 가운데 잘 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동료들과 함께 회식하는 날이었다. 고된 일과에 시달리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 러나 한 달에 한 번 회식을 하는 날이면 음식을 잘 먹고 노는 것 까지는 좋은데, 꼭 술병이 따라 붙기 때문에 나로서는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 가운데는 술 마시기를 거절하고 한 쪽 구석에서 콜라잔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나를 보고 "김 목 사, 그래도 딱 한 잔만 해보지 그래. 예수님도 포도주는 많이 마셨다고 하던데…. 뭐 술 마시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하며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나는 성령 체험을 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약속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직장 동료들도 나의 그런 신앙적인 결심을 이해해 주었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술, 담배를 즐기는 교인들과는 좀 다르다는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술, 담배의 문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접대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 한국에서 종교적인 신념을 고집 하여 술, 담배를 거부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왕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숨어가면서, 또 어떤 이 들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이 문제를 피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술, 담배의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는 관점, 또는 개인의 건강 문제 등으로 보고 본인의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지 이를 신앙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한국 개신교에서 술, 담배를 절대 터부시하는 것은 한국적인 개신교만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영국 등 개신교의 뿌리가 되는 국가에서도 청교도적인 삶을 강조하는 종파에서는 술, 담배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적인 상황과 좀 다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술, 담배 문제는 개인적인 소신, 또는 건강 문제로 개인이 알아서 결정해야 될 사항이지, 종교적인 신념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아직까지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혼자만 마 음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문제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을 권면하고 싶다. 사단은 늘 우리 마음 가운데 죄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너 같은 인간이 무슨 크리스천이 될 수 있겠나'는 식의 참소당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이를 통해 신앙인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술, 담배 문제 때문에 늘 좌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단이 가장 원하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끊을 수 있다면 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일 그렇지 못할지라도 술, 담배 문제로 자기 스스로에게 이중인격자,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간 등의 참소 딱지를 붙이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란다. 술, 담배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일이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다 보면 술, 담배의 문제는 성령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받게 된다. 사단은 참으로 영악한 영물이다. 그래서 늘 우리의 생각을 앞서간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우리 의 원수다. 믿음 위에 잠시 선 듯하면 다시 쓰러뜨리려는 존재가 바로 사단이다. 술, 담배의 문제를 개인 의지의 결정 문제로 생각하지 말과 영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기 시작하면 보다 쉽게 그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풍성하게 받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 사모하기는 했으나 그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철저히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깨닫고 있었지만 그 분의 신묘막측한 놀라운 말씀에 어떻게 좀더 체계적으로 다가가야 할지에 대한 이렇다 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나름대로 개발한 방법이 아침 출근 전 라스베이거스식(?) 성경 읽기였다. 라스베이거스식이라고 하니까 말이 좀 그런데,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성경책을 들고 기도한 후에 아무 페이지나 열리는 대로 말씀을 한 구절 찍어 보고 그 말씀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 원하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계속 암송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요 행수를 바라는 라스베이거스 심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라스베이거스식 성경 읽기라고 스스로 재미 삼아 이 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런 엉뚱한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주셨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는 정말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곤 해서 나는 이런 식으로 성경 읽는 방법에 대해 묘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읽는 것은 성경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남들이 뭐라하든 나는 어떤 말씀이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는 라스베이거스식 매일 성경 읽기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고 많은 말씀을 암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봉제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 여자 집사님이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으면서였다. 그때까지 만 해도 나는 다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일에 정말 자신이 없었다. 이미 호적상 세 번 결혼에 실패했고, 아들까지 한 명 딸려 있는 홀아비에게 과연 누가 시집을 오겠냐는 자격지심마저 심해서 다시 결혼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집사님 한 분이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신앙심만 좋다면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안 보고 결혼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꼭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예수에 미친 사람끼리 만나서 이야기도 나눠 보고, 또 좋으면 함께 가정을 이뤄서 사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냐며 무조건 중매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떠밀려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맨해튼 봉제 공장 앞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서 였다. 맞선을 보기에는 분위기도 좀 그렇고 적절한 장소도 아니었지만 우선은 공장에서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특별히 분위기가 좋은 장소라고는 한 곳도 아는 곳이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