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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킹에서 우리는 햄버거 하나와 음료수를 시 켜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 중에 음식을 먹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빈 테이블에 앉아 있자니 눈치가 보일 것 같았고 그래도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면 왠지 말이 술술 풀릴 것 같기도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김태훈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김경애입니다."

아내는 검은색 티셔츠에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처럼 보였다.

"저는 봉제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급도 많이 받지 못하고, 뭐 그저 벌이는 신통치 않지만 특별히 다른 할 일이 없어서… 1985년도에 이민 와서 첫 직장으로 일을 시작해서 벌써 만 1년이 넘었습니다. 미국에 오니까 한국보다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아파트 안에서 아는 손님들의 미용 손질을 해드 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를 중매했던 동료 집사님도 아내가 하는 미장원의 단골 손님이 었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인 1977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미용 기술을 배워 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미용 관련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저는 앞으로 평신도든 교역자로든 주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것이 평생 꿈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서라도 써주시기만 한다면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표정에서 약간의 동요가 보였다. 내가 혹시 뭔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얼른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데, 아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가장 큰 복은 주님의 선택을 받아서 주의 일을 마음껏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태훈 씨가 만일 주의 종이 된다면 당신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잠깐 사이였지만 아내의 눈망울에 물기가 맺히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한 시간 정도 우리는 버거킹에 마주 앉아 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물론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 성민이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는 전혀 그 런 사실에 개의치 않는 듯한 눈치였다.

버거킹을 나와 얼마 동안 맨해튼 길을 걸었다. 그때는 초가을이었는데 날씨가 그렇게 춥지도 않고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옆에서 다소곳이 쫓아오던 아내에게 대뜸 우리 아들 성민이를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좀 당황하더니 금방 그렇게 하자고 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의 단칸짜리 아파트로 갔다.

원 베드름 아파트에는 성민이를 봐주기 위해서 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기거하며 지내고 있었고, 그나마 방 하나는 아파트 렌트비를 줄이기 위해서 셋방을 내주고 있어서, 결국 우리 식구들은 거실 쪽에서 그냥 뭉개면서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전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일 이 여자가 나의 남은 여생을 함께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의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구질구질한 모습부터 다 보여 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러고 나서도 싫다고 하지 않으면 그때 나도 결혼할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계산을 마음 속에서 하고 있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아니,함께 오신 아가씨는 누군가?"

"오늘 처음 만난 김경애 씬데, 성민이를 한 번 보러 왔습니다."

성민이는 거실 한쪽 구석에서 조그마한 상을 펴놓고 숙제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비가 눈짓을 하자 성민이는 하던 숙제를 잠시 내려놓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지금 몇 학년이니?"

"4학년입니다."

"학교 공부하는 거 힘들지 않아?"

아내는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처럼 그렇게 다정하게, 그리고 전혀 어색하지 않게 성민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혹시 정말 저 여자가 하나님이 정해 주신 나의 진정한 배필일까'

마음 가운데 확신이 서는 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첫 번째 만남에서 서로가 좋은 감정을 갖고 헤어진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나중에 아내는 그날 우리집에 왔다가 성민이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연필로 노트에 쓴 것을 보고 많이 놀랐고 또 이런 사람과 아이라면 함께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 김경애 사모의 간증>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꿨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크고 둥근 보름달은 꿈에서라도 처음 봤다. 보름달 빛이 옥토밭으로 바닷물 쏟아지듯 흘러들었다. 평생을 기도하면서 살아오신 어머니가 옆에 서 계셨다. 달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달이 계속 나눠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처음에 하나였던 보름달이 어느덧 12개로 나눠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엔가 12번째 달이 쿵 소리와 함께 옥토밭으로 떨어졌다. 밭 옆에 조그마한 교회 건물이 있었는데 언제 나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와 옥토밭에 떨어진 달을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났다. 옆에 묵묵히 계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너 도 가서 한 번 잡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내심 마음 가운데 나도 한 번 잡아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쏜살같이 옥토밭으로 뛰어들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잡으려고 할 때는 잡힐 듯하다가도 다시 멀어지곤 했던 보름달이 내가 옥토밭에 발을 대는 순간 내 쪽으로 굴러오기 시작 했다. 짐짓 놀라 뒷발걸음질을 하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엔가 보름 달이 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손을 뻗어 보름달을 만지는 순간, 그 보름달은 황금 깃털을 가진 거대한 비둘기로 변했다. 앗! 너무나도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김태훈 씨를 만나고 난 후 왠지 모르게 그에게 호감이 갔다. 키도 작고 깡마른 체구가 겉으로 보기는 참 왜소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수님을 참 많이 사랑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왔다. 사실 나도 이제 나이 30이 넘었는데 무슨 조건을 그렇게 까다롭게 찾을 때도 아닌 것 같 고…. 아들에게 성경을 노트에 적게 하며 말씀을 배우게 하는 것도 참 인상적이었다. 평소  생각했던 이상형 배우자 조건과는 하나도 일치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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