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AZ 포스트::문학
조회 수 8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new1.jpg

 

 

노을지는 강둑에서 하산은 16세기의 로미오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줄리엣을 따라 죽는 로미오가 아닌 줄리엣을 살려내는 로미오가 될 거야.."

너를 떠나느니 차라리 죽겠어, 라는 말을 내가 한 뒤였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하산의 말 역시 진심임을 나는 안다. 죽음도 우리를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다. 전쟁의 여파는 강둑에도 미치고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던 가을의 강둑은 파리 날리는 시장통 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에 떨던 두려움은 물러가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결혼 밖에 해결책이 없어."

"그게 불가능하니까 내가 죽고 싶은 거지."

우리 사이에는, 로미오의 몬테규가와 줄리엣의 캐플릿가 사이에 벌어지는 반목질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애가 가로막혀 있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넘지 못 할 태산같은 장애였다.

"내가 유대교로 개종할 거야. 야훼는 개종한 나를 기꺼이 품어줄거야."

개종. 하산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고 나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종교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죽음을 초월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나 역시 하산과 결혼 할 수 있다면 나에게 이슬람교로의 개종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산과 함께라면 지옥도 천국이었다.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지옥이고 불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내게 닥칠 불행을 예감한다. 

유대인 추방 명령이 내려진 것은 2주 전이었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빵공장에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아버지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침통한 표정의 이유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성이 말해주고 있었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닫아도 유대인은 물러가라,는 목소리는 집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차라리 끝나지 않는 전쟁이 되어야 했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라도 그것이 요르단에 살고 있는 우리 유대인에겐 나은 편이였다. 아랍 연방국에서 유대인 추방은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 행위였다. 이스라엘과 아랍 연방군과의 전쟁(1947년 제 1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했고 이스라엘은 독립국가라고 선포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몇 십만명에 이르는 아랍인들을 추방했다. 그것에 대한 보복 행위가  아랍 연방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요르단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요르단 정부는 유대인의 추방 명령을 2주 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요르단 정부가 허용한 이주 준비 기간은 한 달이었다. 그 기간이 지나면 군인들의  강제 추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섬뜩한 공표가 뒤를 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떠나라면 도대체 우리가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아버지의 한숨은 길게 이어졌다.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버지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바로 '알 나크바'(재앙의 시작)였다. 알 나크바는 결국 우리 가족을 추방하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빵공장을 포기하는 것은 아버지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산의 가족은 우리에게 특별했다. 두 가족 간의 특별한 관계의 중심에 하산이 있었다. 내가 열 세살이 되던 때였다. 유유히 흐르는 요르단 강은 생각보다 깊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오였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던 발이 허둥거렸고 내 주위를 덮친 물속의 어둠은 순식간이었다. 내 작은 몸이 허우적거릴 따마다 어둠은 점점 더 짙어질 뿐이었다. 어둠이 끝나는 순간에 나는 나를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함께 내 눈에 들어오는 푸른 하늘보다 더 눈부신 것이어서 나는 그 눈동자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내가 강에서 살아 돌아온 후 아버지는 한 사람을 고용했다. 하산의 아버지가 무슬림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빵공장에서 일하게 된 후부터 하산의 가족은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것이 아버지가 원한 것이었다. 하산 아버지는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하산이 열 여덟살이 되었을 때 하산을 고용할 만큼 공장은 커져 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공장에서 일하던 나는 하산과 더이상 다른 곳에서 만날 필요가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하산은 구수하게 잘 구워진 빵을 접시에 담고 나를 찿았다.

낮의 고성이 사라진 밤은 조용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추방, 결혼, 개종이란 단어가 떠도는 심란한 마음에는 책이 명약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주위가 조용한 가운데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손님이 방문하기에는 늦은 밤 시간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아버지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었다. 급히 문 따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하산이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거실로 나가 하산 손을 잡았다.

"곧 추방될 사람하고 결혼이라니?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밤에 문을 두드리게 할 만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제가 개종을 하겠습니다. 이슬라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어버지는 눈을 감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일단 집으로 돌아가게."

아버지의 눈은 하산이 돌아간 후에도 오랫동안 감겨 있었다.

예루살렘이 우리가 사는 요르단에서 가장 가까운 이스라엘 도시였다.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지는 의문이었으나 일단 그것으로 이주지를 결정한 아버지는 집과 공장 사이를 오가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공장의 소유를 하산의 아버지로 옮기는 작업은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됐다. 공장의 소유가 하산 아버지로 바뀌는 서류가 마무리 되던 날, 우리 가족은 하산의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아버지가 식탁에 앉자마자 하산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도 예루살렘으로 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요."

아버지는 하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하산 아버지는 전혀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인종도, 종교도 막지 못하는 사랑을 제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알라도 야훼도 둘에게 축복을 내리실 겁니다."

하산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식탁에 앉은 모든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산 곁으로 다가갔다.

"내 딸을 여기 두고 떠나겠네. 내 딸의 개종도 허락하겠네."

 하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껴안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내 머릿속은 히잡을 쓴 내 모습이 몹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1.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날궂이 -아이린 우

    갑자기 하늘이 컴컴 해지더니 제비들이 낮게 날고 거센 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동네 어귀 길봉이네 할머니가 산발을 한채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 고래 악을 써댄다 어른들은 비 설것이로 발길이 분주해지고 강아지는 봉당 구석에 웅...
    Date2021.01.04
    Read More
  2.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이별 -소머즈

    떠났나요 그대를 다 알지 못했는데 그대를 다 기억 못 하는데 그리고 그대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추억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떠난다는 그 말이 떠났다는 그 말이 메아리 져 먼 산울림에 귀가 멍해집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포도넝쿨...
    Date2020.12.10
    Read More
  3.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공감: 아픔을 고쳐주는 공구 -이영범

    오래 전 아리조나 피닉스 에서 살었을 때의 일이다. 나의 가까운 친지 구 교수는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새벽 세 시에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려 교회를 가게된 것은 몇...
    Date2020.12.03
    Read More
  4.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창문 밖에는 가을이 저문다 -박찬희

    세월을 낚은 무게에 힘겨운 어깨가 파열음을 일으킨다 들숨과 날숨 속에 특권처럼 쥐었던 긴장의 실타래가 힘없이 풀어지던 날 20년 아득한 시간을 지우개로 지웠다 화살같이 스치었던 마을과 오가던 길을 지우고 접혀 있던 산자락마저 지워 버렸다 허무로 뭉...
    Date2020.11.26
    Read More
  5.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시월의 그리움 -권준희

    흔적만 여기 저기... 떠난 세월 보이지 않아도 지문처럼 남긴 기억 잠잠히 머릿속에 살다가 불현듯 예쁜 고통으로 찾아와 내마음을 후벼파면 강풍에 휘둘린 나뭇잎 처럼 요동치는 그리움 못이겨 아리고 시린 마음 끝에 매달린 눈물 끝내 하나 둘 떨구고 붉어...
    Date2020.11.16
    Read More
  6.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김률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법적한 소리가 제일 먼저 나를 반겼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구레네(지금의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빠른 걸음과 뛰기를 반복한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여유가 있었다. 유월절 저녁 식사 떄까...
    Date2020.11.06
    Read More
  7.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꽃무릇 -아이린 우

    꽃술 하늘 향해 벌리고 무엇을 기다린다 안타까운 사랑일까 슬픈 다짐일까 안으로 도사린 사연 절절한 그리움으로 토해놓은 색채 백석과 자야인가 끝내 만나지 못하는 꽃 과 잎 올해도 길상사 꽃무릇은 더 붉게 피었다는데 화려한 선홍빛 절정이 안타까워 두...
    Date2020.10.31
    Read More
  8.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뿔난 여자 -소머즈

    무엇이 못마땅해 발걸음이 쿵쿵 진동할까 입은 불어 터진 식빵처럼 내밀어 온 세상 불평을 쏟아낼 기세로 눈치만 보고 눈은 매가 먹이를 찾아 날개를 펴고 하강하듯 두리번거리며 쏘아본다 폭탄의 위력이 이것보다 셀까 터트리면 온 동네 쑥대밭이 될까 의심...
    Date2020.10.16
    Read More
  9.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하늘은 오늘도 푸르다 -안현기

    희뿌연 산불 연기 도시를 휘감고 아침 내내 창문을 지키던 어린 소녀 연분홍 드레스 위에 진분홍 꽃가방을 메고 학교 건널목에 서서 가파른 언덕을 내려 꽂히는 차들을 바라보다 전기줄 타고 오는 다람쥐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 작은 손놀림에 자욱한 연기가...
    Date2020.10.08
    Read More
  10.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소행성 205호 -박찬희

    금시초문의 낯선 병명이 호출되던 205 호 병동 긴 숨 내 뱉으며 낯선 인연들과 마주 선 날 아무렴, 때가 아닌데 아직은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랑들이 대추나무에 주렁주렁 걸려있다고 아직은 떨기나무 한 그루 제대로 심어보지 못했다고 아직은 속절없는 내 마...
    Date2020.10.02
    Read More
  11.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더 고마울 때 -권준희

    내가 좋아하는 열 가지를 해줄 때보다 가장 싫어하는 한 가지를 안해줄 때가 더 고마워... 편안해진 마음은 오랫동안 머무르며 긴 인사를 하네
    Date2020.09.26
    Read More
  12.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알 나크바 -김률

    노을지는 강둑에서 하산은 16세기의 로미오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줄리엣을 따라 죽는 로미오가 아닌 줄리엣을 살려내는 로미오가 될 거야.." 너를 떠나느니 차라리 죽겠어, 라는 말을 내가 한 뒤였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하산의 말 역시 진심임을 나...
    Date2020.09.17
    Read More
  13.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여름의 한 가운데 서서 -안 현기

    빨간 수박 속같은 여름 그 가운데 서서 나는 먼 길 떠나는 기러기 울음소리에서 가을을 듣고, 다람쥐는 호두나무 주위를 서성거리다 고소한 속살이 반도 차지 않은 호도를 하나 따 입에 물고 금잔화 그늘 밑의 땅을 판다. 스프링클러가 식식거리며 잔디위를 ...
    Date2020.09.10
    Read More
  14.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두 마리 토끼 -아이린 우

    19세기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신분증에 사진을 붙인 나라 프랑스는 마스크는 쓰지 못하게 했다는데 도둑이나 테러범의 정체를 가리는 떳떳하지 못한 이미지와 이슬람 히잡이나 니캅에 대한 거부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서양인들에게는 마스크가 얼굴을 가리는 ...
    Date2020.09.02
    Read More
  15.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슬픈 그리움 -김 명옥

    멀리 간 것 같은데 그 자리에 와있네요 돌고 돌아갔는데 여기 와있네요 그대의 흔적을 지웠는데 사진도 옷도 당신의 그림자도 다 치웠는데 아직 내 마음에 있네요 새로운 지역에 갔는데 거기도 당신과 추억은 남아있네요 슬픈 드라마 속에도 당신의 그림자는 ...
    Date2020.08.27
    Read More
  16.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고 목 (古木) -박찬희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타마리스크 고목은 무거운 생애를 걸머진 채 헐거워진 몸을 풀어 그늘이 되고 새의 둥지가 된다 온몸으로 받아든 비바람의 기억들로 팽팽했던 지난 날들은 풀죽은 듯 쓸쓸한 미소로 햇살을 불러 외로움을 견디며 안으로 마음을 다독인...
    Date2020.08.20
    Read More
  17.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상실의 시대 (2020년의 봄 여름) -소머즈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두리번두리번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곁에서 머물렀던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지워지고 있네 그대의 다정한 목소리 기억나지 않고 그대의 우아한 몸짓도 생각나지 않네 나중에 내게 무언가 들려주려 말을 건네는 그 다정함이 생각나지 않...
    Date2020.08.20
    Read More
  18.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너의 힘 -권준희

    ‘양심’ 은 탁한 현실속에서도 ‘진실’ 이 고개를 숙이지 않게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난 네게 늘 기대어 살아요.
    Date2020.08.09
    Read More
  19.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카틴 숲의 진혼무 -김률

    음악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댄스파티가 열릴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곡, '오로벨라'였다. 스탈린이 '오로벨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태생적인 것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오로벨라를 듣고 자랐다. 그루지야 태생이었고 오로벨라는 그루지야...
    Date2020.08.01
    Read More
  20. [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하지 무렵 -안현기

    내가 잠든 사이 솔잎사이로 하느작거리던 초생달이 내일로 떠나고, 별들은 남은 밤을 지키려 눈을 부릅뜨는데, 갑자기 우주를 뒤흔드는 천둥 울리니, 세상은 숨을 죽이고 새 생명을 기다린다. 주인 잃은 희뿌연 꿈들이 먼지되어 떠다니는 낡은 헛간 뒤에서 어...
    Date2020.07.2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6 Next
/ 16
롤링배너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