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City? 뚱보들이 많은 도시를 말하는 것일까? 다이어트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만든 용어일까?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FAT City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FAT City 안에는 좀 더 복잡하고 깊은 뜻이 담겨있다. F.A.T. City는 좌절(Frustration), 불안(Anxiety)과 긴장(Tenson)이 가득한 공간과 시간을 의미한다. 처음 내가 미국에 와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경험했던 바로 그 느낌을 온전히 담고 있는 단어이다. 처음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주문했을 당시의 그 느낌. 뒤에서는 긴 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버벅거리며 원하는 버거를 주문했는데, 쏟아지는 알쏭달쏭한 질문들. 한참을 귀를 쫑끗 세우며 주문을 했건만, 나오는 것은 엉뚱한 종류의 햄버거. 항의도 하지 못한 채, 시무룩 해져서 내가 주문한 것과는 다른 햄버거를 묵묵히 먹어야만 했던 그 좌절감!
이 완벽한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학습장애(Learning Disability)'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릭 라보이(Rick Lavoie)'이라는 사람이다. 이 분은 30년 넘게 특수교사, 강사, 대학 교수 등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미국 교육방송(PBS)에서 이 분의 사역을 기념한 방송을 제작했던 것을 보면 유명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한국 검색사이트에서 릭 라보이를 검색해보니 자료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 지구인들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것 같다. 릭 라보이는 처음에는 학부모들과 일반 학급의 교사, 교육 종사자들을 위해 학습장애를 지니고 있는 학생들이 매일 매일 경험하게 되는 느낌을 직접 느껴 보게 하고 설명해주는 워크숍을 진행하다가 그것을 비디오로 만들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며칠 전 새해를 맞이하여 책상을 정리하다가 릭 라보이의 강의 스크립을 발견하면서 그 분의 조언들을 장애인을 자녀로 둔, 특히 학습장애나 ADHD를 지닌 자녀를 둔 학부모나 관련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히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하는 행동이나 말을 들어보면 생뚱 맞다는 느낌을 주는 장애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학습장애(Learning Disability),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tic Spectrum Disability)를 지닌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시시때때로 어떤 느낌을 가지고 생활하게 될까?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 같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하려면 FAT City라는 표현이 잘 들어 맞는다. 어떤 면들이 ADHD, 학습장애,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FAT 하게 만드는가? 릭 라보이는 몇 가지를 이야기 했다.
먼저 장애의 만성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이다. 사람들은 종종 ADHD, 학습장애, 자폐증이 치료될 수 있는 질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또는 이것이 장애라기 보다는 '게으름' '부주의' '산만함' 등에서 비롯되는 결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분명하게 말한다. ADHD, 학습장애, 자폐증은 없어지거나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이나 특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해서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상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ADHD, 학습장애, 자폐증을 가진 학생들이 일부러 생뚱 맞은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이나 말투를 보인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엇이 ADHD, 학습장애, 자폐증을 지닌 지구인들이 엉뚱한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가? 우선 재구상화(revisualization)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일반 사람들은 말을 하기 전에, 또는 말을 하면서 광경이나 사물, 단어 등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예를 들면 '떡볶이'라는 말을 하거나 들으면, 머릿속에 떡볶이의 모습이나 글자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올리기가 가능해야 받아쓰기, Spelling test, 청소 등을 잘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방을 청소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머릿속에 깨끗한 상태의 책상, 책꽂이, 침대 등이 어느 정도 떠올라야 그것을 목표로 청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지닌 지구인들은 재구상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정리정돈, 읽기, 쓰기 등을 매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배경지식(Background Knowledge)이나 상식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 장애를 지닌 지구인들의 삶을 FAT 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일일이 설명을 하거나 학습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책상은 나무나 쇠로 만들어졌고, 감자튀김은 감자를 튀겨서 만든다 정도는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지구인들 중에는 십대가 되었는데도, 겉은 너무나 멀쩡하고 척 보기에는 말도 얼추 잘 하는데도, 막상 자기가 사용하는 책상은 산에 있는 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며 좋아하는 감자 튀김은 슈퍼에서 파는 감자를 튀겨서 만드는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배경지식이 빈약하다는 것은 학교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준다. 선생님들에게는 황당함을 안기며, 부모들에게는 절망을, 친구들에게는 놀림거리가 된다. 배경지식의 부족함은 공부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장애를 가진 지구인들은 일반 상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친구들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예절이나 식사예절을 지키지 못 할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선생님이나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도 거침없이 내뱉기도 한다.
세번째로 장애를 지닌 지구인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듣게 되는 빈번한 충고와 야단 그리고 오해를 통해 '학습된 무기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겪게 된다. 장애를 지닌 지구인 입장에서 본다면 학교에서는 무슨 말만 했다 하면 비난을 받기가 일쑤이고, 정답을 이야기 하면 당연하게 취급되어 칭찬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과제나 질문에 도전을 하기 보다는 '가만히 있어 중간이라도 가자!'라는 태도를 가지기 쉽다. 또 미국에서는 지나친 보상교육(compensatory education)의 발달로 이 증상은 더욱 심화된다. 즉 지나치게 모든 것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도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가 강화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젓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지구인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젓가락 사용법을 훈련한다. 그래서 내가 맡았던 장애 학생들 모두는 젓가락 사용해 밥을 먹었다. 또 워낙 보조교사 등의 지원이 없다 보니 급식 시간에 배식을 받는 것, 자리에 앉는 것 등을 웬만하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장애 학생들을 맹훈련시켰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도시락 통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것에서부터 뚜껑을 여는 것, 뒷정리 하는 것 등을 보조 교사들이 대신 해주는 통에 장애를 지닌 지구인들이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리하여 생활 전반에 무기력감이 퍼져 있다 보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학습하는 일이 드물어지게 되어 생활이 단조롭고 제한되게 된다.
이외에도 장애를 지닌 지구인들과 그 가족들을 FAT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머지 요인들과 대처법들은 다음 주에 다루기로 한다. 위의 내용들을 읽다 보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FAT을 즐거움(Fun), 활기참( Active), 그리고 대단함( Tremendous)으로 만들 의무와 책임감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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