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을 사서 이사한 서울의 작은 아들 집에 가기 위해 상경한 할머니가 서울역에서 실종됩니다.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남편 할아버지는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자 아내가 당연히 따라 들어오겠거니 하고 지하철을 탑니다.
출발하고 보니 아내는 타지 않았고, 다음 역에 내려 아내가 서 있던 자리에 돌아왔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시작 부분으로, 9개월 동안 모든 가족이 찾아 나서지만 끝내 찾지 못합니다.
소설은 어머니 박소녀 할머니가 큰 딸, 큰 아들, 남편, 그리고 작은 딸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큰 딸 아이를 시카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의 한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던 큰 아들을 찾아오는 박소녀 할머니에 관한 묘사입니다.
"그가 (큰 아들입니다) 도시에 방을 얻은 뒤로 서울역에 도착할 때의 엄마는 전쟁이 터져 피난살이를 온 사람의 행색이었다. 엄마는 그에게 실어나를 것들을 머리에 이고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도 모자라 허리에 찬 채 서울역 플랫폼을 걸어나왔다. 그러고도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엄마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나 호박 같은 것을 다리에 매달고라도 왔을 것이다. 엄마의 주머니에서 풋고추나 알밤, 신문지에 싼 깐마늘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가 엄마를 마중나가보면 엄마의 발치 아래엔 젊은 여인 혼자 들고 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보퉁이들이 수북했다. 엄마는 뺨이 상기된 채 그 보퉁이들 가운데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로지 아들에게 주겠다는 일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어머니, "인간의 사랑 중 하나님 사랑에 가장 흡사한 것이 있다면 어머니의 사랑이다."
열 번 백 번 맞는 말입니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미친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미쳤다.'
하나님이 미쳤다니요!
1347년에 태어나서 33년을 살고 1380년에 죽은 중세 여성 수도자 시에나의 캐서린이 쓴 『담화』 The Dialogue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오 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나님! 사랑에 미치신 분이시여! (중략) 그런 주님이 그토록 사랑에 미치시다니 어인 일입니까?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과 사랑에 빠지셨단 말입니까? (중략) 주님은 저희 인간의 모습을 입으셨고, 이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생각하실 때 이성을 잃으십니다.
사랑에 미치시는 것이죠.
독생자가 있었는데, 우리에게 미치셔서 그 아들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시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정상이 아니고, 비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데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미친 듯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는 딸을 떼어놓고 뒤돌아 설 때, 아내는 연신 눈물을 닦고 있었고 내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MBC 피디수첩(PD수첩)이 한국 조선일보 방용훈의 가족에 대한 것을 방송했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지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쥐락펴락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권세 앞에 누구도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았는데 MBC에서 큰 일을 해냈습니다.
방용훈의 부인은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결정을 하며 그 이유로 자녀들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자녀들인데도, 그 자녀들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하며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어머니.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친 사랑이고, 비이성적 행동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사랑은 그런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