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입니다.
인터넷이나 예화집 같은 데에서 이미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첫째는 재산에 관한 것으로,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해야 행복하답니다.
재산은 조금 부족한 듯해야 더 값지고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너무 과해서 흥청망청 소중한 줄 모르고 사는 사람, 행복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겠지요.
둘째, 외모에 관한 것입니다. (또는 용모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외모(또는 용모)일 때 행복하답니다.
'나는 외모가 좀 부족해' 라고 생각하고, 또 실제 그렇고. 그러면 같이 있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데도 친구가 되어주고 만나주고 같이 있어주고' 라는 생각에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행복입니다.
셋째, 명예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의 절반 밖에 인정받지 못할 때 행복합니다.
Fully 인정 받거나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과도하게 인정받으면 오히려 부담되고 불안하고 결국은 거기에 얽매이게 됩니다.
절반 정도 인정받을 때,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 불만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플라톤은 그것을 행복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넷째, 체력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겨뤄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적당한 체력일 때, 조심하고 겸손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인간관계가 더 끈끈해집니다.
행복이죠!
완벽한 체력과 건강에 자신만만해 하고, 부족할 것 없는 의료보험 갖고 있다고 자랑한다면 행복할까요?
오히려 좀 약하고 부족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고,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그것이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청중의 절반만 박수를 쳐주는 말솜씨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절반에게만 박수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이 논리가 분명하다는 얘깁니다.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 분명하면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를 얻지는 못하겠죠.
그러나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분명히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행복하죠.
반은 부족하지만 그러나 행복합니다.
한 마디로 플라톤의 행복 비결은 부족함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재산도, 외모도, 명예도, 체력도, 가치관도, 부족합니다.
100% 완벽하지 못하고 다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합니다.
부족함에서 오는 행복, 참된 행복입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로 시작하는 단락에 보면 예수님과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주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평온하게 해주시며 목적지로 도착하게 해주십니다.
거기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니, 제자들이 그를 따라갔다"(23절).
예수님이 배에 먼저 오르시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는 얘깁니다.
3년 전 이맘때쯤 한국 성공회 대학의 신영복 교수가 피부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무고한 옥살이를 한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의 책으로 한국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신 분입니다.
영결식에서 가수 정태춘 씨가 <떠나가는 배>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노랫말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우리 인생 살이가 배와 같다는 얘깁니다.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물결 너머 어둠 속으로 떠나가는 배와 같은 우리 인생, 산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8장 23절, 배에 예수님이 먼저 오르시고 제자들은 따라 오릅니다.
진정한 행복은 강남 길이든, 해남 길이든, 물결을 넘든, 어둠 속이든, 인생 뱃길에 예수님이 먼저 올라가 계시면 됩니다.
예수님 뒤만 따르면 행복합니다.
플라톤의 다섯 행복에 예수님을 더하니 부족할 것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