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는 아기들도 바쁘다. 이것 저것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젊은 엄마들은 아기가 빨리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기에게 이것 저것 가르치느라 돈이 많이 드는데 오히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원비나 교재비가 덜 들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사는 중산층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우선 동네 놀이방이나 유아원에 다녀야 한다. 언어에 영재성을 풍긴다면 영어 유치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서 친구도 사귀고 단체생활의 맛을 어렸을 때부터 익힌다.
아기가 놀이방에 있는 동안 엄마들은 브런치 카페에 모여 나름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육아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도 하고 앞으로의 긴 학교생활 여정을 함께 할 동지들도 만든다.
걸음마를 하면서 기저귀를 뗄 쯤이 되면 한글도 배우고, 아기 스포츠단에서 수영도 익힌다. 그 사이 사이에 유아 학습지, 가베, 몬테소리, 짐보리, 미술, 영어 등 '놀이'의 탈을 쓴 여러가지 학습활동을 함께 곁들인다.
젊은 엄마들은 일찍이 독서의 중요성을 깨달아 거실 한쪽 벽면을 온통 책장으로 꾸며 놓고 유아용 전집을 구비한 후 TV 대신 책을 읽게 한다. 대신 엄마와 아빠는 컴퓨터 모니터와 핸드폰으로 예전과 다름없이 볼만한 것은 모두 시청한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뭔가 좀 더 새롭고 창의적으로 접근해 보고 싶다는 열성 엄마들은 '엄마표' 교육을 실시한다. 그리하여 엄마표 영어, 엄마표 수학, 엄마표 음악 등등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조기교육에 열심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참 뇌가 왕성하게 세포 분열을 하는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재능을 빨리 발견하여 남보다 서둘러 재능을 계발하고 앞서 나가기 위해서란다.
가끔 어린 나이에 영어를 엄청나게 잘해서 TV에 나오는 꼬마들을 본다. 그들을 보면서 저렇게 영어를 잘하면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 본다.
초등학교에 가서 토플을 만점 받을 것인가? 초등학교때 토플을 만점 받으면 그 성적 만으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되는 것일까? 설사 초등학교 나이에 또는 중학교 때 남보다 빨리 좋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빨리 졸업하게 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게 되는 것인가?
내가 조기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미국의 프리스쿨에서 일하게 되면서 미국의 조기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게 될 프리스쿨 학급은 3세에서 5세까지의 특수아와 일반 유아들이 함께 다니게 될 반이다.
특수아들은 교육비가 무료이고, 일반 유아들은 상당한 학비를 내고 다니게 된다. 이런 류의 프리스쿨을 통합 학급(inclusion preschool)이라고 칭한다.
처음에는 과연 장애아 학생, 일반 학생이 반반인 유아원에 일반 학생들이 학비를 내면서까지 올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품는 그 자체가 이상한 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이다. 통합 유아원은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미국 공립 초등학교의 반 구성이나 인력 배치를 보면 '낙오자'를 없애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각 학교마다 '영재반'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특수학급'과 특수교사는 여러 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학습 도우미 선생님(Academic Interventionist)'이 따로 있기도 하다.
미국 선생님들은 맹비난을 하고 있는 교육개혁법안의 이름이 '낙제 학생 방지법' (No Child Left Behind Act)인 것은 신기하기만 하다.
이 법안은 낙제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법안에 아니라 미국 교육의 전반적인 체계와 방향을 결정한 중요한 법안이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어떻게 하면 학력이 떨어져 낙오되는 학생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이 법령을 근간으로 한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나타난다.
미국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ESL 교육도 따지고 보면 영어가 안 돼서 낙오되는 학생들이 없게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역시 낙오자를 방지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보면 되겠다.
특수교육도 그러하다. 한 학생도 낙오시키지 않기 위해 심리 상담가, 언어치료사, 작업치료사, 문제 행동 전문가, 특수교사, 일반교사, 교육행정가가 달라붙어 교육 계획을 짜고 그것을 현장에서 실행한다.
미국에서의 조기 교육은 물론 한국처럼 각종 예체능, 언어 교육 등 앞서가기 위한 교육도 있겠지만, 공교육에서 실시하고 있는 조기교육은 대체로 발달이 늦어지거나 장애가 있는 아기들을 빨리 발견하여 어렸을 때 최대한 많은 치료와 훈련을 통해 일반 아이들과의 격차를 줄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주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현재까지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그렇다.
과연 일등을 만드는 교육과 꼴등을 없애는 교육 중 어떤 것이 모두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일까?
예전에는 한 명의 천재가 수천 수만명의 일반인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낙오자 한 명을 끌어안고 살리는 것이 그의 가족들과 이웃들과 더 나아가 동네를 살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더군다나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조기교육을 해도 천재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낙오자를 보통 사람으로 끌어 올리면 끌어 올린 사람들도 끌어 올려진 과거 낙오자도 모두 영재성을 발휘하게 된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메일 namenosh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