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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jpg

 

 

밤새 비가 왔습니다. 

보슬보슬 봄비가 온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었습니다. 

새벽에 고양이가 걱정되어 백야드로 나가보니 잘 잤다는 양 꼬리를 툭툭 치며 저를 반깁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보고 서둘러 씨를 뿌려놓았는데 그 위로 빗님이 충분히 내려오셨습니다.

봄 농사는 가을 농사보다 기대감이 큽니다. 

백야드 텃밭에 무우, 배추, 열무, 당근(Carrot), 상추 등 이것 저것을 파종했습니다.

올 해는 특히 감자를 처음 시도해보았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도와 농사지었던 기억을 희미하게 기억해내고, 또 유트브로 공부하며 씨감자를 깊이 심었습니다. 

감자 농사의 포인트는 땅을 깊이 부드럽게 해주는 것입니다. 

땅 속에 감자가 달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땅을 깊이 파서 덩어리를 부수고 최대한 고운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너무 부드럽게 해놓았는지 밤비에 씨감자 심은 부분이 움푹지어 있었습니다.

주일 설교했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는 히브리서 4장 7절 말씀으로, 완고한 마음으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누구보다 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죠. 

나이가 들면서 젊은 청년들을 자꾸 의식합니다. 

'쟤들이 나를 꼰대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요. 

저 스스로 볼 때 정말 그럴 때가 있고, 딸 아이는 저에게 직접 그런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분은 나빴지만 저를 각성하게 해주어 감사했습니다.

감자밭을 부드럽게 하려고 땅 속 깊이 삽질을 하며 '내 마음의 밭에는 이렇게 하고 있는가?' 스스로 물었습니다. 

삽질 당하는 땅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쑤시고 아팠을까? 

그렇게 하여 부드러운 땅이 되고 감자 알을 실하게 맺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하기까지 땅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아픔.

지난 2년 여 참 힘들었습니다. 

목사들에게 닥쳐오는 50대 중후반의 슬럼프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교회 건물을 팔아야 했고, 무너질 뻔 했던 가족을 다시 견고하게 세워냈습니다. 

한국 모교회 목사님과 옛 교우들의 중보기도,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의 눈물 어린 위로의 말씀, 그리고 한치의 요동함도 없이 묵묵히 함께 해주신 장로님과 교우들, 무엇보다 가족들의 합심이 2년 여 고통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미국 교회를 빌려 예배 모임을 갖은 지 두 달 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일 학교를 맡고 있는 아내는 거의 매주 미국 교인들을 만납니다. 

저는 주로 예배실 쪽에 있어서 미국 교인들을 만나는 일이 없는데, 아내는 주일학교 준비를 하다가 성경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미국 교인들을 만나는 일이 많습니다.

미국 교인들이 주로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너희가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아내의 답은 언제나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제 마음의 밭에 삽질을 심하게 깊이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마음의 밭은 더욱 부드러워지는 법, 거기에 크고 실한 감자 알이 달립니다. 

군에 간 아들에게 어머니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짧은 편지 속에 이런 말이 들어있었습니다. 

"때론 시련이 큰 그릇을 만든다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은 작은 그릇마저 찌그러뜨리기 일쑤란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의 어머니입니다. 

평생 시련 속에 살아본 어머니의 리얼한 인생 평가입니다. 

고난을 미화하고 의미롭게 설교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작은 그릇마저 찌그러뜨리는 고난일 때가 많지요. 

저에게도 찌그러진 것들 여럿 있습니다. 

관계가 무너지고 신뢰에 금이 간 사람들, 물질적인 손해,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며 건강에 이상이 왔고, 몇 번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고도 했고…. 

찌그러진 것들 많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고난은 유익합니다.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되었고, 긍휼의 마음을 품기 시작했고, 공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우리는 나무가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고요.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이 학교 입구에 이런 교훈을 써놓았습니다. 

"쓴 맛이 사는 맛."

쓴 맛이 저를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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