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관광지 그랜드캐년에서 지난 18여년 간 방사능 물질이 무방비로 방치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CNN 등에 따르면,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의 안전·보건 디렉터 엘스턴 스티븐슨은 이메일을 통해 "2000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그랜드캐년 박물관에 우라늄 물질이 보관돼 있었다"며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국과 아리조나주 내무부 관계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관광객에게 방사능 노출 위험성을 경고해달라고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계기관들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자 스티븐슨은 올해2월 4일 모든 국립공원 직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박물관의 은폐 의혹을 폭로했다.
스티븐슨의 주장에 따르면, 19리터짜리 플라스틱 양동이 3개에 담긴 우라늄 물질은 지난 18년 간 국립공원 박물관의 유물보관소(그랜드캐년 콜렉션 빌딩 bldg 2C)에 놓여 있었다.
이 물질은 오래 전 그랜드캐년 인근 나바호 인디언 자치구역 내 우라늄 광산에서 채집된 것으로 국립공원 본부 지하에 있다가 2000년 박물관이 개장하면서 건물 내부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슨에 따르면 우라늄 광석 양동이는 지난해 3월 국립공원 직원의 10대 아들이 방사능 세기를 측정하는 가이거 계수기를 들고 박물관을 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19리터 용량의 양동이 하나는 뚜껑을 닫을 수 없을 정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우라늄 물질은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금속 용기에 밀봉해 보관한다.
스티븐슨은 위험한 사실을 안 뒤 즉시 국립공원관리국에 자세한 조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실을 전해들은 공원 관리자들은 우라늄 물질들을 근처 폐광산에 버리도록 지시했을 뿐이었다.
스티븐슨은 당시 직원들이 방사능 관련 안전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정원용 장갑을 끼고 긴 작대기에 양동이 걸어 이를 운반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은 이후 몇 달 간 국립공원관리국에 공원의 직원들과 관광객들의 방사능 노출 가능성을 알릴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11월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SHA)에 이 사실을 폭로했다.
OSHA의 조사 결과 우라늄 물질을 비운 양동이는 다시 박물관에 방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라늄 광물이 방치되어 있던 박물관 건물은 매년 약 550명의 관광객이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해왔다.
이에 대해 국립공원 대변인은 양동이가 놓였던 장소는 투어 프로그램에 속한 곳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특히 이 장소가 박물관의 '박제 전시관'과 가까운 거리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박제 전시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이 곳에 오래 머물렀다며 방사능 노출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국립공원관리국은 아리조나주 내무부, 보건부 등과 함께 이 사안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공단은 성명을 통해 "최근 조사 결과 안전기준 수치를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수준인 '백그라운드 레벨'의 방사능이 검출됐다"며 "이는 일반 관람객이나 박물관 직원들에게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스티븐슨의 요청을 받고 작년 박물관 내 방사선 레벨을 점검한 연방방사선 안전국은 우라늄이 담긴 3개의 통 주변에서 '백그라운 레벨' 이상의 방사선이 측정됐다는 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측은 방사능 노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위한 '핫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원 대변인은 "관람객과 직원의 안전과 이 의혹에 관한 대응책을 신중히 생각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나오는 추가 정보를 계속 공개하겠다"고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케이스의 경우 관람객들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 수준에 피폭됐다고 보긴 힘들지만 문제는 이 건물에서 매일 일했던 직원들 그리고 인턴으로 일했던 고등학교 청소년들이 얼마만큼 방사선에 노출됐느냐 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