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의 특성상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는 쿼터백이다. 모든 플레이의 출발은 쿼터백이 센터로부터 볼을 넘겨받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풋볼에서 좋은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가장 큰 차이는 쿼터백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시즌에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 중 하나는 아리조나 카디널스의 루키 쿼터백 카일러 머리(22)다. 지난 4월 열린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아리조나의 지명을 받은 머리는 지난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드래프트에서 먼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1라운드에 지명됐던 선수인데 다시 NFL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됐다.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MLB와 NFL에서 모두 1라운드에 지명된 기록을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선수다. 특히 외할머니가 한국인이고 그의 어머니도 '미순(Misun)'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는 등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한국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오클랜드는 2018년 MLB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오클라호마대 외야수 머리를 지명하고 계약까지 했으나 풋볼선수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싶다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가 2018년 가을 시즌을 오클라호마대 쿼터백으로 뛸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머리는 그 해 풋볼시즌을 마친 뒤 풋볼 선수로서 커리어를 마감하고 풀타임 야구선수로 돌아서 2019년 스프링캠프부터 메이저리그를 향한 도전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확실한 주전 쿼터백으로 나선 2018년 대학풋볼 시즌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머리는 쿼터백으론 왜소한 체격 조건(178cm, 94kg)에도 천부적인 재능과 스피드, 뛰어난 경기 감각과 두뇌플레이로 대학풋볼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시즌에 4000야드가 넘는 패싱과 42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한 것은 물론 러싱으로도 1001야드와 12개의 터치다운을 뽑아내는 신들린 활약으로 오클라호마대를 빅12 콘퍼런스 챔피언이자 대학풋볼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대학풋볼 시즌 최우수선수에게 수여되는 하이즈만 트로피까지 수상했다. 그전까지 머리의 체격 조건 때문에 그를 프로 유망주로 보지 않았던 NFL 구단들도 머리의 눈부신 활약에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올해 4월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아리조나에 지명돼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NFL 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아리조나는 원래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미래의 쿼터백'으로 뽑은 주전 쿼터백이자 전 UCLA 출신 톱 유망주 조시 로젠이 있었으나 머리를 놓칠 수 없어 결국 그를 지명한 뒤 로젠을 마이애미 돌핀스로 트레이드해 보냈다. 머리에게 팀의 미래를 맡기는 '올인'을 부른 셈이다.
그만큼 머리는 대학풋볼뿐 아니라 NFL에서도 특급스타가 될 자질과 잠재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막을 올린 아리조나의 트레이닝 캠프에서도 포커스의 상당 부분이 머리에게 집중되고 있고 캠프 2주째로 접어든 현재 머리는 그런 흥분과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팀내 자체 청백전에서 정확한 패싱으로 18개의 패스 중 14개를 성공시키고 수차례 빠른 발을 이용해 디펜스의 프레셔를 벗어나는 모습은 올 시즌 그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아리조나의 슈퍼스타인 베테랑 와이드리시버 래리 피츠제럴드는 "신인 쿼터백이 팀에 합류하자마자 오펜스를 이렇게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은 처음 봤다"면서 "그는 캠프 첫 날부터 라인을 조율하고 여러 가지 다른 플레이를 체크하며 상대방의 블리츠(Blitz·쿼터백을 잡으려 후방 수비수들이 기습적으로 투입되는 플레이)가 들어올 때 스크린 플레이를 대비시키는 것까지 어려움 없이 해냈다. 오펜스에 대한 그의 이해도는 정말 미친 수준"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폭스스포츠의 NFL 분석가인 피터 슈래거는 "머리는 올해 리그 첫 날부터 센세이션이 될 것"이라면서 "아리조나 감독이 팀의 오펜스를 그에게 맞춰 짜고 있다. 그는 올해 리그를 불타오르게 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희망적인 모습과 전망에도 머리가 NFL에서 엘리트 쿼터백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낙관하긴 힘들다. NFL이 루키 쿼터백들에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그의 왜소한 체격조건은 부상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아리조나의 오펜시브라인은 지난해 리그 전체에서 5번째로 많은 52개의 쿼터백 색(sack)을 허용했을 정도로 허술한 편인 데다 아리조나의 신임 감독 클리프 킹스버리의 '에어 레이드'(Air Raid·공습) 스타일 오펜스에서 머리가 상당한 부상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머리는 또 러닝 쿼터백의 특성도 지니고 있는데 이 역시 수비수들의 무시무시한 태클을 당한 위험성이 크다. 대학풋볼 때는 그의 스피드만으로도 수비수들을 가볍게 따돌리곤 했지만 NFL엔 그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폭발적 스피드를 자랑하는 수비수들이 즐비하기에 대학시절처럼 마음대로 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NFL 팀의 디펜스는 그 복잡함과 정교함에서 대학팀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현혹적인 수비 대형과 모션으로 상대 쿼터백을 함정으로 유도하는 NFL 디펜스들은 백전노장 쿼터백들조차 판단과 격파에 애를 먹는다. 당연히 그런 것을 처음 실전에서 경험하는 루키로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시행착오와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 과정을 얼마나 빨리 통과하느냐, 그리고 항상 잠재돼 있는 부상의 지뢰밭을 얼마나 잘 피해갈 수 있느냐가 NFL에서 머리가 아리조나의 간판 쿼터백으로 성장할 지를 판가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