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부는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보류했을 때 의회에 통보하지 않았나요? 우크라이나와 그 협력국들이 이 조치를 공식적으로 인지하고 있거나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었나요?"
지난달 29일 오전 미 의사당의 상원 회의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원 탄핵심판 심리를 주재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 변호인단을 향한 아리조나주 민주당 소속 커스텐 시네마(43) 연방상원의원의 질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질문의 요지는 정부가 지난해 3월 엘살바도르·온두라스·과테말라 등 중미 3개국, 같은 해 9월 아프가니스탄에 각각 취해진 원조 중단 및 보류 결정 당시엔 연방법에 의거, 이를 의회에 통보하는 합법적 절차를 따랐는데, 왜 우크라이나의 경우 땐 쉬쉬했느냐는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하나인 정적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 수사를 압박하기 위한 침묵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적 질문이었던 셈이다.
언론들은 시네마 의원의 정곡을 파고든 질문에 트럼프 변호인단이 일격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인터넷매체 복스는 "긴 하루였다. 특히 트럼프 변호인단에게는"이라 썼다.
사실 시네마 의원의 이날 행보는 다소 의외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회전문매체 더 힐 등 언론들이 조 맨친(웨스트버지니아)·더그 존스(앨라배마)와 함께 트럼프에게 무죄 반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큰 민주당 상원의원 중 한 명으로 시네마 의원을 꼽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압승한 이른바 공화당 텃밭을 지역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소속은 민주당이지만, 보수적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실제로 시네마 의원의 그간 행보는 민주당 소속인지 공화당 소속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는 2018년 11·6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강세 지역인 아리조나에서 30년 만에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 초선인데, 당시 그는 승리 수락 연설에서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에게 승리의 헌사를 바쳐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8월 뇌종양 투병 끝에 사망한 매케인은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공화당 거물로, 아리조나에서의 그의 위상은 실로 막강하다.
더 나아가 지난해 2월 윌리엄 바 법무장관 지명자 인준 표결 때도 그는 당론에서 벗어나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당시는 로버트 뮬러 특검의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한창이 시절이어서 민주당은 혹시라도 특검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트럼프의 핵심측근인 바 법무장관 인준에 강력히 반대하던 때다.
그런 시네마 의원이 앞장 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이어가자 트럼프 변호인단은 패닉에 빠졌다.
트럼프 변호인단의 패트릭 필빈 변호사(백악관 부보좌관)은 "우크라이나의 동맹국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측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의회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합법적인 정책이라고 반박했지만, 언론들로부터 "다소 옹색한 답변"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시네마 의원의 '의외의 행보'는 미 하원 소추위원들에겐 적잖은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 저격수'로 통하는 애덤 시프 탄핵소추위원장(하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트럼프 측 필빈 변호사의 답변을 이렇게 비꼬았다.
"계획이 실패했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 외국(우크라이나) 정부에 야당 대선후보(조 바이든) 수사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전쟁 중인 동맹국에 군사원조를 주지 않는 건 정책이 아니다. 그건 바로 내가 줄곧 말해왔듯이 '부패'이다."
그렇다고 시네마 의원이 트럼프 탄핵 찬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시네마 의원은 최근 아리조나 지역 TV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편견 없이 탄핵 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언론들은 "시네마 의원이 어느 쪽에 마음에 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트럼프 변호인단의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며 "그녀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