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종전 선언을 지지했던 진보 성향의 라울 그리잘바 아리조나주 연방하원의원(민주당)이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3일 AP 통신 등에 따르면 2024년 4월 폐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아 온 그리잘바 의원이 이날 숨을 거뒀다.
2003년 아리조나주 제7지역구에서 첫 당선된 이후 내리 12선을 기록한 고인은 2024년 11월 총선을 앞두고 “이번이 마지막이며 2026년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으나 결국 12번째 하원의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리잘바는 1948년 아리조나주 피마 카운티에서 멕시코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아리조나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한 그리잘바는 일찌감치 이민자 및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눈을 떴다.
그는 미국 내 히스패닉 주민의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아 지역사회와 대학 등에서 히스패닉 학생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대외정책과 관련해 그리잘바는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2월 그는 동료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함께 한반도 종전 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당시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53년 3년 넘게 이어진 6·25 전쟁의 휴전을 위해 체결된 정전 협정을 ‘전쟁 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킨다’는 의미의 종전 협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 결의안의 핵심 내용이다.
이는 진보 진영에서는 환영할 만한 주장인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에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빌미를 줘 한국 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2023년 3월 워싱턴에 있는 6·25 전쟁 기념 조형물 일부인 미군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이름 상당수가 틀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파문이 일었다.
자칫 한·미 동맹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는 악재였다.
이에 그리잘바는 당시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에게 “진상 규명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202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가 불거졌다.
그해 7월 그리잘바는 공개적으로 바이든의 대선 후보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는데, 이는 여당인 민주당 현역 의원으로는 두 번째였다.
미국 진보 진영의 대부로 통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그리잘바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샌더스는 고인을 “하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 중 한 명”으로 규정하며 “미국 노동자 가정을 위해 싸우는 데 평생을 바친 고인이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