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1, 2공장에서 일할 6000명 필요하지만 이제 2000명 확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아리조나주 피닉스 반도체 공장 신설에 맞춰 올해 6000명 이상을 새로 채용할 예정이지만 필요한 인력을 제때 충원할 수 없어 비상이 걸렸다.
TSMC는 현재 피닉스에 2개의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 및 과학 법 (칩스 법) 시행을 통해 반도체기업에 대규모 재정 지원에 착수하자 TSMC 등이 앞다퉈 미국 내 공장 증설에 나섰다.
TSMC는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과 애플, AMD, 엔비디아 등 주요 미국 고객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한 아리조나 공장 상량식에서 기존 투자에 더해 총 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기업 미국 투자 기록이다.
이 공장들은 각각 2024년, 2026년부터 첨단 3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TSMC의 지난해 총수입은 570억 달러에 달했다.
애플의 아이폰, 퀄컴의 스마트폰 칩, AMD 컴퓨터에 모두 TSMC의 반도체 칩이 사용된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와는 별개로 피닉스 공장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일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언론 매체 ‘쿼츠’는 TSMC가 기존에는 2년제 칼리지 졸업 이상의 학력자 채용을 추진했으나 이제 학력 제한 조건을 없앴다고 3일 보도했다.
마리코파 커뮤니티 칼리지에는 TSMC 취업을 목표로 한 10일짜리 단기 프로그램이 신설됐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수강생들은 270달러의 수강료를 내고, 이 코스를 마친 뒤 TSMC에 취업 지원서를 낸다.
그렇지만 TSMC가 이 코스를 마친 사람을 당장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매체에 따르면 현재 약 700명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TSMC 취업을 기다리고 있다.
이수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아리조나주는 거주 주민에게 과정 수료시 수강료를 전액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에 취업하는 기술직 근로자의 시작 연봉 중간치는 4만8370달러 가량이다.
초단기 프로그램 등장은 현재 반도체 산업의 인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쿼츠는 아리조나주에서만 향후 몇 년 사이에 2만 명 가량의 반도체 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TSMC는 지난 3월 엔지니어링과 전자 공학, 소프트웨어 등의 분야에서 전문대와 4년제 대학 졸업자, 석사, 박사 등의 인력을 충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사 학위 소지자의 초봉은 연봉을 기준으로 6만5578달러라고 이 회사가 공지했다.
TSMC는 현재 600명의 엔지니어를 포함해 약 2000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TSMC는 근무 환경에 대한 대만과 미국의 문화 차로 인력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최악으로 소문난 데다 경쟁사인 인텔보다 보상도 적어 해결책을 모색하곤 있지만 상황 해결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4일 미 포천지에 따르면 온라인 취업 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에서 근무 환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미의 '승인 점수(approval rating)'를 준 응답자는 TSMC 미국 사업부의 경우 27%로 나타났다.
응답자 3명 중 2명 이상이 일하기 힘든 회사라고 평가한 것이다.
아리조나에 또 다른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인텔은 같은 질문에 85%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포천은 소식통을 인용해 TSMC의 혹독한 근무 문화, 엄격한 규율, 장기간 해외 연수 의무 등으로 인해 미국인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우선 TSMC의 장시간 노동,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미국 인재를 붙잡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TSMC의 글래스도어 페이지에는 "사람들이 한 달 내내 사무실에서 잔다" "하루 12시간 근무는 기본에 주말 근무도 일상적. 워라밸 최악" 등의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TSMC에서 6년간 일했다는 한 엔지니어는 "TSMC는 업무와 관련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고 하지만 엔지니어나 차장급, 부서 매니저급 정도만 가능하다"면서 "현실적으로 매니저가 더 상부에 의견을 내놓는 건 불가능한 분위기"라고 밝혔다.
또 초과근무 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징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TSMC의 전 세계 직원 이직률은 2017년 11.6%에서 2021년 17.6%로 급증했다고 포천지는 전했다.
또 TSMC가 석사 학위 이상의 고학력 직원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 인력 확보에 난관 중 하나로 꼽힌다.
2020년 TSMC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내 직원의 60%, 관리자급 80% 이상이 석사 학위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미 로체스터공과대(RIT)의 샌토시 쿠리넥 교수는 "산업 내에 박사 학위 소지자가 필요하긴 하지만 모두가 박사일 필요는 없다"며 TSMC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TSMC가 대만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지급하지만 미국에서는 경쟁사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TSMC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는 평균 16만달러를 받지만 인텔에서는 이보다 3만달러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포천지의 설명이다.
일부 직종에 있어서는 TSMC 입사 후 대만으로 건너가 12~18개월 가량의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구직자의 발길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연수 기간이 길어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이를 꺼리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지정학적 긴장감 때문에 우려하는 직원들도 있다.
2021년 4월, TSMC는 미국에서 새로 고용한 600명의 엔지니어를 전원 대만으로 보냈다.
TSMC 측은 포천지에 "그들은 이제 첨단 반도체 기술을 제대로 익혀 아리조나로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인난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 않자 TSMC는 인력 확보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21년 전 세계 직원 급여의 20%를 인상했다.
또 미국 직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피트니스 센터 등 복지 시설을 마련하고 워라밸을 위한 활동도 진행하면서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포천은 전했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2030년까지 미국 반도체 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력 중 약 40만 명 가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해 칩스 법 발효 이후 현재까지 50여개의 글로벌 반도체기업이 4만4000명에 달하는 신규 고용 계획을 세웠다.
바이든 정부는 TSMC가 미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미국과 대만 간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과세방지협정은 기업 활동을 촉진하려고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얻은 소득에 본국이나 외국 중 한 국가에만 세금을 내도록 국가 간에 맺는 협정이다.
이는 기업이 경제 활동을 하는 국가(원천지국)와 출신 국가(거주지국)에서 세금을 이중으로 내는 것을 막고,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협정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대만 대표부는 미국에 투자한 대만 기업은 수익의 51%를 세금으로 내고 있고, 이는 한국이나 호주 기업보다 최소한 10% 이상이 많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