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아리조나주 피닉스 공장 건설을 두고 미국 노동계와 대립하고 있다.
TSMC가 ‘숙련된 노동자 부족’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한 게 발단이다.
미국 노동계는 TSMC가 값싼 대만 노동자를 미국으로 들여오려 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TSMC가 미국과 독일로 생산기지를 확장하면서 ‘노조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4000명 이상의 배관공, 용접공 등이 가입한 노동조합인 ‘아리조나 파이프 트레이드 469’는 TSMC에서 요청한 비자를 거부할 것을 미 정부 당국에 촉구하는 청원을 시작했다고 경제매체 인사이더가 13일 보도했다.
이들은 청원서에 “아리조나 건설 노동자를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것은 미국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칩스(CHIPS)법’ 제정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TSMC는 아리조나 공장의 가동 시점을 당초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늦추기로 했다.
TSMC 류더인 회장은 “숙련된 인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대만에서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TSMC는 지난 6월부터 500명에 이르는 대만 근로자들이 ‘E-2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아리조나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가운데 하나인 아리조나 건설무역협회의 애론 버틀러 회장은 지역언론에 기고해 “이 프로젝트의 문제에 대해 미국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미국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TSMC는 건설 지연에 대해 미국 노동자를 비난하고, 더 적은 임금을 줄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기 위한 핑계로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버틀러 회장은 "TSMC 관계자들이 아리조나 근로자들이 피닉스공장 건설을 마무리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면서 "이곳 근로자들은 지난 40년 동안 챈들러의 인텔 반도체 웨이퍼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풍부한 노동력"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자 TSMC는 ‘일시적 채용’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TSMC는 “이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제한된 기간에만 머물 것이다. 미국 기반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칩스법은 반도체 생산을 미국에서 하고, 미국인 고용을 늘리는 걸 뼈대로 한다.
때문에 TSMC가 대만에서 인력을 끌어오는 것은 칩스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TSMC는 세금 공제와 보조금을 합쳐 최대 15억 달러(한화 약 2조원)의 혜택을 미국 정부로부터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에선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TSMC의 무노조 경영이 글로벌 생산기지 확장 과정에서 노조와 충돌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TSMC는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 회장부터 지금까지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강하다.
지난해 12월 TSMC의 아리조나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3000명의 노동조합원이 아리조나 공장 건설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발언하자 창 전 회장은 약간 언짢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 전 회장은 2016년 한 인터뷰에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성공한 것은 노조가 없어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