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첫 여성 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88)이 치매 유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알츠하이머 치유 전도사로 나서며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안겨줬던 그는 이제 운명처럼 찾아온 병마와 마주하게 됐다.
지난달 23일 CNN에 따르면 아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는 오코너는 '친구들과 친애하는 미국인 여러분'이라고 시작한 서한 형식의 성명에서 "얼마 전 의사가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라는 진단을 내렸다"며 "병이 심해지면서 더 이상 공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제 주변의 많은 사람이 저의 상태와 활동을 궁금해했다"며 "제가 (여러분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때 저의 달라진 변화들을 공개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낙태나 사형제도 등 대형 이슈에선 보수나 진보 이념에 편향되지 않은 입장을 취하며 20여 년간 미국 대법원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미국에서 대법관직은 종신 임기다.
그러나 오코너는 76세가 되던 2006년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사랑하는 남편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간병인으로 변신한 오코너는 남편을 보살피면서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알츠하이머병 예방과 환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알리는 사회 활동에 적극 나섰다.
또 미국 젊은이들에게 시민 윤리를 강의하는 웹사이트 '아이시빅스(iCivics)'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제 모든 공적인 활동에서 물러나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AP통신은 가족의 말을 인용해 "오코너가 단기 기억에 문제가 있고 이동할 때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코너는 "아리조나 사막에 살던 어린 카우걸(cowgirl)이 연방대법원의 첫 여성 대법관이 되리라고는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가족, 지인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라며 "치매가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할지 모르지만 축복받은 내 삶에 대한 감사와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과 미국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이라며 글을 맺었다.
미국 각계각층에서 유리 천장을 깬 법조인이자 알츠하이머를 당당하게 고백한 오코너의 용기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오코너 전 대법관은 거탑과 같은 인물이자, 여성은 물론 법 앞에 평등한 모든 이의 모범이었다"며 "비록 공적 생활에서 은퇴하기로 발표했지만 그 어떤 병세도 그가 많은 이를 위해 제공했던 영감과 열정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트위터에 "오코너 전 대법관은 우리 모두의 표상이었으며 항상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다"며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됐지만 우아함과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썼다.
오코너는 1930년 텍사스주 엘패소 카운티에서 태어나 16살에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
그는 1952년 스탠퍼드 로스쿨을 클래스 3등으로 우수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직이 아닌 법무비서직을 제안 받는 등 로펌 입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방암 수술을 받고도 2주 만에 업무에 복귀할 정도로 강인함과 근면성을 갖췄지만 당시 여성차별 때문에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산마테오 카운티 검사보로 공직 활동을 시작해 아리조나주 검찰 부총장을 거쳐 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지명으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됐다.
오코너는 대법관 취임 후인 1992년 임신 기간과 부모 및 배우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낙태권을 제한해온 펜실베이니아 주법의 위헌성을 다툰 '가족계획 대 케이시 사건'에서 낙태권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미국 내 여성의 낙태권을 최초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인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한 것으로, 오코너는 이후 여성 권리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