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려오실 분은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서 아이의 옷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이번 주에 '골프 해방구'를 여는 아리조나주 스카츠데일의 소방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당부했다.
'골프 해방구'로 불리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이 30일 TPC스카츠데일(파71)에서 개막한다.
이 대회는 관중들에게 음주와 고성을 허용하는 특이한 골프 대회다.
춤판이 벌어지는가 하면 '치맥 파티'도 곳곳에서 열린다.
특히 '더 콜로세움'이라는 별명을 가진 16번 홀(파3)이 유명하다.
로마 `콜로세움`과 닮은꼴인 이곳은 이론적으로는 쉬운 홀이다.
160야드 정도이니 8번이나 9번 아이언으로도 손쉽게 볼을 올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적이 많다.
자신에게 쏠린 3만여 명의 눈, 압도당한 멘탈, 그리고 음주와 음악 소리, 고성 속에서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선수들에게는 입이 바짝 마르는 긴장감과 한숨이 나오지만 갤러리들은 선수들의 티샷부터 벙커샷, 퍼팅까지 한번에 볼 수 있는 종합선물상자 같은 홀이다.
굿샷에는 최고 환호, 그린을 놓친다면 잊지 못할 야유를 받는다.
만약 홀인원이라도 한다면 그 선수는 마치 영웅이 된 듯 엄청난 환호 속에 티박스에서 홀로 걸어갈 수 있다.
타이거 우즈는 1997년 이 홀에서 홀인원을 해 많은 갤러리가 환호하는 가운데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반면 미스샷을 했다면 마치 죄인이 된 듯 야유 속에서 그린까지 걸어가야 한다.
관중도 많다.
2018년 PGA 투어 대회 사상 최다인 71만9000여명의 관중 수를 기록했다.
같은 해 3라운드 관중 21만6818명 역시 하루 최다 관중 기록이었다.
관중 수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자 대회 주최 측은 지난해부터 집계를 중단했지만 올해 관중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관중석과 음주 장소가 지난해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스카츠데일 소방당국은 하루 20만명 안팎에 이르는 관중들이 사고 없이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1년 가까이 준비를 했다.
경기장 곳곳에는 의료 텐트도 설치됐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로 인한 사고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면서 과음을 자제해달라고 소방당국 관계자는 당부했다.
피닉스 오픈은 음주와 고성 응원, 야유를 허용하는 '골프 해방구'이기도 하지만 떠들썩한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가장 '착한'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다.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인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M)는 미국 최대 폐기물 처리기업으로 대회 기간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제로)' 캠페인을 진행한다.
지난 2013년부터 대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전량을 에너지나 비료 생산 등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병·캔·플라스틱 컵 등은 재생하고 음식물·냅킨·종이컵 등은 퇴비화한다.
코스 내에는 누구나 쉽고 철저하게 분리 배출할 수 있는 수거함을 4000개나 설치하는데, 이 수거함도 재생 판지로 만든 것이다.
18번홀 연못에 띄우는 WM 대형 로고도 헌 골프공 14만개를 모아 장식했다.
2014년 스포츠비즈니스저널 선정 '올해의 스포츠 이벤트'로 뽑힌 피닉스 오픈은 친환경 부문 단골 수상은 물론 2018년까지 PGA 투어 올해의 대회상과 팬 친화 부문 대상도 각각 세 차례 수상했다.
대회 수익금 중 일부는 기부해왔는데 누적액이 6800만달러에 이른다.
2010년부터 피닉스 오픈 주최사로 들어간 WM은 지난해 10년 재계약에 사인해 2030년까지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다.
짐 피시 WM 최고경영자(CEO)는 "대회장을 찾는 팬들이 지구를 위한 바람직한 변화에 동참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 한국 선수들은 모두 7명이 출전한다.
최경주(50), 강성훈(33), 안병훈(29), 이경훈(29), 노승열(29), 김시우(25), 임성재(22)가 주인공이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역시 임성재다.
세계 랭킹(35위)이 현재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높고, 페덱스컵 랭킹도 9위에 올라있다.
임성재는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지난해 공동 7위에 올라 여기 코스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안병훈도 우승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스포츠 베팅업체 '드래프트킹스'의 프로모터인 리드 파울러는 안병훈을 우승 후보 5명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안병훈은 2017년 이 대회에서 6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저스틴 토머스(미국)다.
2019~2020시즌 들어 벌써 2승을 올리며 페덱스컵 랭킹 1위에 올라있는 토머스는 시즌 3승째를 노린다.
지난해 우승자 리키 파울러(미국)와 대회가 열리는 아리조나에서 대학을 다닌 욘 람(스페인)도 우승 후보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