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부모를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사기사건이 벌어져 아리조나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도 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아리조나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 재학 중인 유학생 A 씨(27)는 최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괜찮으냐, 다친 곳은 없냐'며 울며 전화를 해왔기 때문.
처음엔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 했던 A 씨는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서야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지난 8월 7일, A 씨 어머니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낯선 남성은 대뜸 '당신의 아들을 우리가 붙잡고 있다'며 몸값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 남성은 어머니에게 아들의 음성을 들려줬다.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들의 목소리는 어머니가 기억하던 그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아들이 정말 붙잡혀 있다고 생각한 A 씨 어머니는 그 때부터 요동치기 시작한 심장을 부여잡을 길이 없었다.
전화 속 남성은 '경찰에 알리면 총으로 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뒤 돈을 주면 미국으로 연락해 아들을 풀어주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은 2시간 동안 이어진 통화에서 '몇 번 역 출구로 돈을 가지고 와라. 거기에 있으면 어떤 사람이 다가와 Hello라고 할 거다. 그 사람에게 돈을 건네면 된다'라며 500만원을 요구했다.
전화 속 남성의 말을 듣고 이미 남편과 집을 나서 지하철 역으로 향하던 A 씨 어머니는 급하게 나오느라 한도가 120만 밖에 출금이 안되는 카드 한 장 밖에 없어 500만원 출금이 안된다고 하자 남성은 '아들 살리는데 성의표시도 못하냐'고 타박을 하기도 했다.
일단 120만원을 먼저 전달한 A 씨 부모는 낯선 남성과의 전화가 잠시 끊어진 틈을 타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이 통화가 되면서 이 모든 일이 보이스피싱 사기사건임을 알게 됐다.
본지와의 통화에서 A 씨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내 목소리도 모르고 그런 사기전화에 속느냐'고 물었더니 낯선 남성이 들려준 목소리가 평소 자신이 기억하던 내 특유의 말투, 목소리와 너무 비슷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내가 유학 중인 걸 어떻게 알았으며, 또한 우리 부모님 전화번호까지 어떻게 알고 비슷한 내 목소리를 준비해 전화하고 협박했는지 아직도 의문점 투성이"라고 말했다.
"내게 확인전화를 못하도록 2시간 동안 계속 어머니와의 통화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A 씨는 "타주에 있을 때 여권을 분실한 적이 있는데 그 일과 이번 사건이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도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내 스스로는 체격도 건장한 편이고 또한 미국에 있어서 큰 염려는 없는데 사건 이후 경찰에 신고한 것 때문에 혹시 한국의 부모님이 사기범들로부터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A 씨는 또한 "이번 일을 통해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연락할 때 서로만이 알 수 있는 암호 같은 걸 만들거나 급히 연락을 취해야 할 때를 대비해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본지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를 전해들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의 사건.사고 담당실무관은 "유학생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이나 다른 종류 사기사건이 빈발하게 발생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실무관은 "보이스피싱 사기수법이 발전하면서 협박해야 할 대상의 정보 취득은 물론 유학생들에게 전화해 목소리를 딴 뒤 이를 합성하고 긴 문장을 만들어 내서 한국 부모들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며 "자녀가 납치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은 부모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사기범은 교묘하게 파고 든다"고 전했다.
2년 전 즈음엔 납치를 했다며 한국 부모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수법이 특히 기승을 부려 이를 총영사관 웹사이트에 안전공지까지 나간 바 있다고 말한 실무관은 주미대사관/총영사관 직원 사칭 전화사기, 국제우편/DHL사무소 위조여권/신용카드 조사 사기, 본국 검찰청 조사 사기, 환전 제안 대출 사기, 휴대폰/컴퓨터 바이러스 감염 수리 사기, 포르노 시청 협박 사기 등 다양한 종류의 사기범들이 유학생들을 타켓으로 노리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이 가운데 특히 유학 중인 자녀를 납치했다는 사기범들은 유학 자녀들이 전화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미국 새벽시간대에 한국 부모들에게 전화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 흐느끼는 여성 목소리를 들려줘 부모들의 심리를 크게 동요시킨다는 것에도 유사점이 있다고 이 실무관은 지적했다.
이런 보이스피싱에 대비해 한국의 부모들은 유학 중인 자녀들의 전화번호, 숙소 주소는 물론 가까운 친구나 기숙사 관리자, 교회 관계자 전화번호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피해를 예방하는 한 방법이라고 실무관은 말하고 "최근엔 카톡이나 보이스톡만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한국의 부모들이 유학 중인 자녀들의 실제 전화번호와 주소를 파악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