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지역의 한 어린 팬은 연고지 피닉스의 2005년 플레이오프 서부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 패배(vs SAS)를 지켜본 후 울먹이며 부모님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 팀 선즈는 내년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겠죠?" 아버지가 대답한다. "물론이지! 불사조들은 널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피닉스 선즈는 이후 다섯 시즌 동안 두 차례 더 컨퍼런스파이널에 진출하며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2월 피닉스의 17연패를 SNS 뉴스로 확인한 꼬마 팬은 부모님에게 물었다. "엄마, 피닉스는 죽어도 부활하는 불사조가 아니었던가요?" 어머니는 "얘야. 태양(suns)이 뜨고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란다."라며 얼버무려야 했다. 불사조는 최근 4시즌 연속 3할대 승률 미만에 그친 팀 현실과 비교해 백만 광년 정도 동떨어진 개념이다.
무엇보다 2018-19시즌 결과가 팬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겼다. 지난 2년간 수집한 다수 유망주, 신임 감독 선임, 준척급 FA 영입 등 장밋빛 전망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종료 시점 성적은 19승 63패 승률 23.2% 리그 전체 공동 28위. 직전 시즌 대비 오히려 떨어졌다. 아울러 9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팀은 올해 여름 다시 한번 전의를 불태웠다. 적극적인 트레이드&FA 영입으로 선수단 구조 개편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단,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양질의 선수단 전력을 구축하더라도 운영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울하기 그지없었던 지난 9시즌처럼 말이다. 이번 시즌에는 팀명에 어울리는 집단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로버트 사버 피닉스 구단주는 아리조나 투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남서부 지역에서 사업에 성공한 후에는 고향 NBA 팀인 피닉스 운영권 인수로 꿈을 이룬다. 구단 인수 시점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분위기 좋았다. 제리(아버지), 브라이언(아들) 콜란젤로 단장 가문의 유산과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 슈퍼스타 스티브 내쉬의 분전에 힘입어 우승 후보로 도약했다. 샌안토니오, 댈러스, LA 레이커스 등과 더불어 서부컨퍼런스 패권을 다퉜던 시기다.
초창기 성공에 취했던 탓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프런트 운영에 개입하는 빈도가 증가했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사장 역할까지 맡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단주가 프런트 업무에 사사건건 개입하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 하에 운영을 가져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명목상의 프런트 수장 맥도너가 프랜차이즈 몰락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피닉스 단장으로 지난 5년간 내렸던 판단들을 둘러보자. 우선 드래프트 상위권 지명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알렉스 렌(2013년 5순위), TJ 워렌(2014년 14순위), 데빈 부커(2015년 13순위), 드라간 벤더(2016년 4순위), 마퀴스 크리스(2016년 8순위), 조쉬 잭슨(2017년 4순위), 디안드레 에이튼(2018년 1순위), 미칼 브릿지스(2018년 10순위) 중 기대치 이상으로 성장한 유망주는 워렌, 부커 정도다. 2018년 드래프트 출신인 에이튼, 브릿지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더라도 실망스럽다. 알다시피 드래프트는 리빌딩 성공에 있어 기본 조건이다.
또한 플레이오프 진출 도전 시기를 잘못 판단했다. 시계를 2013-14시즌으로 되돌려보자. 48승 34패 승률 58.5% 성적에도 불구하고 서부컨퍼런스 9위에 그쳤다.(8위 DAL 승률 59.8%) 리빌딩 정상궤도 진입을 확신한 프런트는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2014년 여름 오프시즌 실수가 바로 아이재이아 토마스 영입이 초래한 쓰리 가드 시스템 구축이다. 기존 원투펀치 고란 드라기치, 에릭 블랫소와의 시너지 창출은커녕, 코트 밸런스 자체가 무너져버렸다. 여기서 멈췄더라면 재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토마스, 드라기치 정리 과정에서 뜬금없이 또 다른 포인트가드 브랜든 나이트를 영입했다. 나이트의 피닉스 시절 성적은 2.5시즌 117경기 평균 15.0득점, 3.8어시스트, 3점슛과 자유투에 보정을 가한 슈팅 효율성 지표인 TS%(True Shooting%) 수치 51.0%, 팀 승리 기여도인 누적 WS 수치 +2.1에 불과하다. 5년 7,000만 달러 장기계약 체결 역시 참담한 실패로 결론 났다.
프런트의 가장 큰 실책은 성급했던 감독 선임이다. 2013-14시즌 48승 주역인 제프 호너섹 해고 후 얼 왓슨(2015~17시즌), 제이 트리아노(2017-18시즌/감독 대행), 이고르 쿠고쉬코프(2018-19시즌)가 잇따라 지휘봉을 잡았다. 어린 유망주들은 계속된 감독 교체로 인해 안정적인 성장환경에서 뛰지 못했다. 스포츠를 자주 접한 팬이라면 잦은 감독 교체가 팀 운영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피닉스의 경우 맥도너 단장 마지막 작품인 쿠코쉬코프마저 2018-19시즌 종료 후 해고당했다. 맥도너와 피닉스의 인연은 2018년 10월에 끊어졌다. 사버 구단주가 2018-19시즌 개막 전까지 수준급 포인트가드 자원을 영입하라고 들들 볶았던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가드 명가 피닉스는 시즌을 앞두고 제대로 된 포인트가드 자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맥도너의 반응은 "당장은 어렵습니다." 사버 구단주는 "응, 너 해고"로 화답한다. 제임스 존스를 필두로 비상시국(?) 프런트 체제가 출범했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10연패 이상을 두 차례나 당하며 4시즌 연속 서부컨퍼런스 밑바닥 거름 신세에 머물렀다. 1월~2월 구간에 걸쳤던 17연패는 구단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런 바닥세를 벗어나기 위한 선즈의 첫번째 선택은 몬티 윌리엄스 감독 영입이다. 포틀랜드(2005~10시즌), 오클라호마시티(2015-16시즌), 필라델피아(2018-19시즌) 코치, 뉴올리언스(2010~15시즌) 감독을 역임했으며 올해 여름 복수의 팀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개성 강한 유망주들이 많은 피닉스 선수단 단합을 이끌어줄 적임자로 판단된다. 감독 잔혹사를 끊어주면 금상첨화. 물론 구단주 그룹이 꾸준한 신뢰를 보내줘야 한다. 다행히 5년 장기계약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했다.
피닉스의 올해 오프시즌 감독 선임과 신인 자원 수급은 일정한 방향성을 내비쳤다. 어느 정도 검증된 지도자와 유망주들을 영입한 것이다. 9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상황. 차기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도전에 나서겠다는 의지표현으로 해석된다.
구단 방침은 FA&트레이드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베테랑 포인트가드 리키 루비오(3년 5,100만 달러 FA 계약), 듬직한 빅맨 애런 베인스(트레이드), 유럽 무대 출신 포워드 다리오 사리치(트레이드), '스트레치 4' 자원 프랭크 카민스키(2년 최대 980만 달러 FA 계약)를 차례로 영입했다. 루비오의 경우 직전 2시즌 포인트가드 잔혹사 해결이라는 특임까지 맡았다. 취약 포지션에 베테랑 선수 영입이 이루어진 부문은 긍정적이다.
스페인 신성 루비오는 NBA 데뷔 후 꽤 많은 논란을 가져왔던 포인트가드 포지션 볼 핸들러다. 요약하면 '스페인 리그+국제무대 화려한 데뷔 -> NBA 진출 후 부상과 부진(MIN) -> 트레이드 -> 모호한 생산력(UTA) -> 커리어 첫 FA 계약(PHX)' 순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올해 9월 FIBA 2019년 월드컵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능수능란한 공격 전술 소화, 돋보이는 슈팅, 안정적인 공수밸런스로 모국 스페인의 우승을 진두지휘했다. 토너먼트 MVP 선정은 보너스다. 아마 사버 구단주 이하 구단 프런트는 대회를 지켜보며 함박웃음 지었을 것이다. 문제는 본업인 NBA에서의 경쟁력이다. 지난 시즌 성적을 살펴보자. 시스템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잡힌 유타 소속이었음에도 기복 심한 경기력을 노출했다. 픽&롤 상황에서의 불안정한 디시전 메이킹, 복장 터지는 슈팅, 잔부상 연례행사 삼종세트다. 무엇보다 3점 라인 생산력이 시즌 내내 널뛰기했다. 물론 새로운 소속 팀에서의 장점 발휘도 기대된다. 넓은 시야와 스크린 플레이 응용, 속공 전개 능력은 업-템포+픽&롤 기반 피닉스 공격 전술 운영에 적합하다. 백코트 파트너 부커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책임 완수다.
올해 여름 인사이드 전력 보강은 만족스럽다. 사리치는 매끄러운 핸드오프 플레이 소화가 돋보이는 포워드. 단거리 드리블 돌파와 스크린 연계 플레이, 중장거리 슈팅 역시 준수하다. 에이튼의 비효율적이었던 동선 개선에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배인스는 신장 208cm, 체중 117kg 당당한 신체조건을 자랑한다. 우승권 전력 샌안토니오(2012~15시즌), 보스턴(2017~19시즌) 소속으로 활약하며 축적했던 경험도 플러스요인이다. 코너 3점슛 장착으로 공격 전술 윤활유 역할도 해준다. 에이튼의 든든한 백업에 더해 짧은 시간 2BIG 전술 운영까지 기대해볼 만하다. 또한 3점 라인 캐치&슈팅에 능숙한 빅맨 카민스키가 가세했다. 에이튼과 드리블 돌파 자원들의 인사이드 동선 확보에 도움을 줄 파트너다.
리그 2년차 브릿지스는 지난 시즌 순조로운 성장 속도를 선보였다. 주전 백코트 콤비가 수비 코트에서 허용하는 공간을 적절하게 메꿔줄 전망이다. 켈리 우브레 주니어와 2년 3,000만 달러 재계약을 체결한 것은 분명 호재. 에너자이저 살림꾼 유형 선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직선 움직임이 탁월한 존슨과 신인 레큐도 활력소 역할을 해줄 자원들이다.
프런트코트 전력은 대폭 업그레이드되었다. 에이튼 중심으로 사리치, 베인스, 카민스키, 쉑 디알로(최대 2년 FA 계약)가 뭉쳤다. 특히 사리치와 베인스, 카민스키 영입을 통해 다양한 공격 전술 구사가 가능해졌다. 또한 풍부한 물량 확보에 힘입어 근본 없는(?) 스몰라인업 운영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관건은 윌리엄스 감독이 뉴올리언스 시절 약점으로 지적받던 융통성 부족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다.
일반적으로 리빌딩은 1. 선수단 해체+샐러리캡 여유 공간 확보 -> 2. 유망주&미래 드래프트 지명권 수집 -> 3. 유망주 옥석 가리기 -> 4. 부족한 전력 보충 -> 5. 플레이오프 진출 도전 순서로 구성된다. 피닉스는 올해 여름 3단계를 생략하고 4~5단계 절차를 밟았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난 시즌 진행한 3단계 결과물이 형편 없었다. 오프시즌 전력 강화가 10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로 연결될 지, 아니면 익숙한 사버 구단주의 조급증에 따른 삽 농구로 귀결될지는 내년 3~4월에 판가름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