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
청명 곡우 다 지나
시작됐던 한 많은 보릿고개
바람이라도 세게 부는 날이면
색깔을 바꾸어 일렁이는 보리밭을 눈에 담고
만주로 시베리아로
강제로 쫓겨간 십만 우리 동포들...
남의 나라 소작농으로도
보릿고개의 한을 풀지 못했다더라
전쟁의 와중에 겪은
십 년 흉년과 혹독한 수탈의 참상은
초근목피로 끼니를 대신하게 했고
만주 좁쌀로 쑨 멀건 조당수나
보리 나물죽은
눈이 번 했었다
커다란 이 남박에
푹 퍼진 보리밥이라도 넣고
쓱쓱 비비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지루한 장마처럼 긴 가난을
지게에 메고 넘던
춘곤기의 아픈 역사
그리고
1945 광복은
천년의 질곡에서
우리 민족을 해방 시킨다
별식으로
건강식으로 우대를 받으며
다시 태어난 보리밥이
더없이 정겨워지는 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찬물에 말아 먹는 보리밥 덩이가
이제 더는 서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