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만큼 유명했던 마타 하리’.
마돈나의 Material Girl을 차 안에서 들으면서 마타 하리를 떠올린 것은 어디서 읽은 이 문구 때문이었다. 마돈나만큼이나 유명세를 탔지만 마타 하리의 최후는 그 유명세가 무색하게 비참했다. 그녀의 몸 위로 의과 대학생들의 날 선 메스가 지나갈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마타 하리의 불행은, 그녀의 요염한 허리를 껴안은 수많은 남자의 손들 중 에밀 졸라를 닮은 손이 없었다는 것일 게다. 자신이 원하는 밍크 옷을 입고 눈가리개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얼굴과 가슴을 향하는 총구를 노려보는 마타 하리는 겨우 40을 넘긴 나이였다. 그녀의 몸을 겨냥하며 발사 신호를 기다리던 총구는 총 12개. 발사 신호가 떨어지자 8개는 빗나갔다. 50미터의 먼 과녁도 추풍낙엽으로 만들던 명사수들이 겨우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총알이 그녀의 몸을 관통하지 않은 것으로 그들 8명의 사수에게 에밀 졸라,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그녀가 사형장에서 4개의 총알을 맞던 그날로 부터 23년 전, 한 남자가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종신형이 내려진 이유가 마타하리와 동일했다. 스파이 활동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1894년 드레퓌스 대위가 스파이로 내몰린 이유는 그의 필체가 독일군에게 건너간 정보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필체가 똑같다면 진범 여부의 논란이 있을 리 없겠지만 비슷한 필체라면 진범을 가리는 목소리가 여럿으로 갈라질 수 있다.
그당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흐르는 민족 감정은 한일 감정처럼,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감정처럼, 감성이 이성을 꺽을 만큼 예사롭지 않았다. 1871년, 보불전쟁은 프랑스의 안방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이 승리의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끝이났다.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던 프랑스는 궁색한 변명을 찾아나섰고 그 변명을 찾았을 때 그들은 패전으로 상실된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패전의 원인은 프랑스가 독일보다 약함이 아니라 정보를 팔아먹은 배신자때문이었다,라고 언론들은 외쳤다. 배신자는 유대인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유럽 사회에선 유대인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 털을 박아놓고 있었다. 반유대 감정이 파리 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그러니까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레퓌스 대위는 유대인이었고 독일군으로 넘어간 정보의 필체가 그의 필체와 비슷함에서 똑같음으로 변하며 그는 반역자가 되어야했다.
한 나약한 인간이, 그것도 유대인이라면, 대중의 여론몰이에서 빠져나올 재간이 없다. 반역자로 몰린 드레퓌스가 돌아갈 곳은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감옥이었다. 모든 것으로 부터 차단된 감옥에서 그는 한가닥 희망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희망보다는 체념과 상실이 전부였던 감옥 생활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빛을 보게 된다. 그 빛은 로로르 신문에 실린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이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것입니다.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이 가득한 밤 말이지요….나는 필적 감정가를 고발합니다. 나는 군사법정을 고발합니다…’
에밀 졸라는 한 개인의 이름을 넘어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그는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유럽이 존경하는 대문호였다. 그가 신문사에 기고한 고발 서한은 파리를 흔들고 유럽을 들썩였으며 드레퓌스가 희망을 놓은 채 어둠을 보내던 감옥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문구가 여지없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깜깜한 방에서 웅크리고 있던 드레퓌스는 가슴을 펴며 감방 벽을 뚫고 들어오는 희망의 빛을 바라봤다. 그 빛은 굳게 닫힌 감옥문을 열게 하는 정의의 빛이었고 진실의 열쇠였다.
마타 하리에게 씌어진 스파이 죄명도 드레퓌스의 사건처럼 확실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마타 하리에 의해 프랑스에서 독일로 건너간 정보의 뚜렷한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 그녀에게 프랑스 장교를 유혹한 스트립 댄서가 아닌 스파이란 죄명을 씌어 사형이라는 구형이 내려질 때 에밀 졸라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에밀 졸라가 태어났겠지만 그녀를 위한 에밀 졸라는 프랑스 어디에도 없었다. 동양적인 신비로운 춤을 추는 그녀의 몸을 껴안은 수많은 남자들은, 총알이 관통한 그녀의 시신을 수습할 때조차 침묵했다. 모두가 외면한 그녀의 총알 박힌 시신이 향한 곳은 의과 대학생들의 실습을 위한 의과 대학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까?”
“없어요. 있다하더라도 나만 간직하겠어요.”
사형 집행장에서 마지막으로 오간 짧은 대화였다. 문득, 비극의 주인공이 된 마타 하리가 자신만 간직하고 싶은 것이 과연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그녀의 독백같은 중얼거림은 이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의 에밀 졸라는 어디에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