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도를 잠에서 깨우는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기침 소리였다. 기침도 수면 시간이 있는지 한 밤중만은 잠잠한 것이 어머니에게 천만다행이었다. 새벽이 오기가 무섭게 기침 소리가 어두운 방의 정적을 깨면 다시 까만 밤이 오기 전, 계속되는 기침 소리로 방에 더 이상의 정적은 없었다. 기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단순한 감기일 거랄 생각한 것이 착오였다. 한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지연된 것에는 어머니의 고집도 한 몫했다. 폐렴이라는 한의사의 진단에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왼손 등만 비빌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계속해서 약을 먹으면 차도가 있다는 말은 범도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뱃사공의 수입으로 비싼 약값을 댄다는 것이 난감했던 것이다. 범도는 뱃사공 외에도 돈 벌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결심하지만 인적이 드문 동네에서 그럴 일은 없었다.
뱃사공 수입만으로 약을 사는 통에 약은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했고 차도가 없는 어머니의 병세는 끊이지 않는 기침 소리가 대변했다. 약이 끊어진 지도 벌써 일주일째. 다시 약을 사기까지 얼마나 더 걸릴 지 범도는 알 수 없었다.
12월의 매서운 겨울 바람이 에워싼 압록강 주변은 인적이 뜸했다. 일본에게 나라가 강점당하고 난 후에는 하루에 강을 건너는 사람이 열 손가락에 차지도 않았다. 손님을 기다리는 작은 나룻배를 바라보다 범도는 눈을 감고 죽음을 생각했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는 자연스레 자신의 죽음이 따랐다. 어머니를 보내고 자기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갈 힘도, 의미도 없었다. 병세가 많이 악화된 어머니가 일정하게 약을 드시지 않는 한, 아들의 얼굴을 보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범도가 감지한 것은 기침과 함께 나온 붉은 피 때문이었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지는 소리에 범도는 감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십명이 떼를 지어 나룻배가 정착하고 있는 강변으로 오고 있었다. 순간 범도는 긴장된 느낌을 받았다. 아주 가끔씩 청년 여럿이 몰려와 돈을 강탈하는 일이 있었던 때문인데 그러나 그 느낌은 이내 사라졌다. 사람 수가 많기는 해도 남녀노소가 골고루 썪인 무리인 탓인지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중년의 한 남자가 범도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범도는 나무 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체구는 범도와 비슷했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우리 가족들을 강 너머로 데려다 주시요. 배 삯은 넉넉히 드리겠소.”
강렬한 눈빛과는 달리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범도는 허리를 연신 굽히며 배쪽으로 향했다. 배가 실어나를 수 있는 사람 수는 최대 다섯이니까 족히 열번은 왔가갔다해야 할 판이었다. 노를 젓는 범도의 입에서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무엇이 그리 신나시요?”
맨 앞자리에 앉은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노를 젓는 범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고 있었는데 신날 수 밖에요. 그런데 송구스럽지만 왠 식구가 이렇게 많지요?”
“여섯 형제 가족에 사촌들, 또 저같은 노비까지 합해졌으니 많을 수 밖에요.”
“당신이 노비라구요? 요즘 세상에 노비라니요. 일본놈들이 지주들 땅을 다 강탈했으니 노비를 거느릴 지주도 없을 텐데요.”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토지 정리였다. 아니 토지 강탈이였다. 토지를 빼앗긴 지주들은 노비를 거둘 형편이 되질 않을 것라는 것이 범도의 추측이었다. 더군다나 갑오개혁 이후로 노비 신분이 없어진 게 아니었던가.
“이 대가족을 이끄는 저 분을 당신이 알 길이 없지요.”
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범도는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던 남자였다. 새끼를 보호하는 암닭처럼 어린애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저 분의 성함이라도 기억해 두시요. 우당 이회영이십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을사 늑약체결의 부당성을 폭로하길 고종께 제안했던 분이지요.”
우당 이회영. 물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네덜란드 헤이그니 만국 평화 회의니 범도에게는 어려운 단어들을 거침없이 말하는 노인 역시 위대해 보였다.
“저는 기꺼이 저 분의 영원한 노비를 자청했습니다. 물론 저 분은 노비였던 저를 당연히 가족처럼 여기지요. 헤이그 특사 사건이 실패로 돌아가고 고종이 강제로 폐위당하자 저 분께서는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전부 처분하셨지요. 당신이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현 싯가 600억)이지요. 조선 땅에서는 독립 운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거지요. 지금 압록강을 건너는 이유입니다. 압록강 너머 서간도 지역에 어마어마한 그 돈을 다 쏟아부을 겁니다.”
후에 그 돈이 만주 신흥 무관 학교를 세우고, 청산리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좌진, 봉오동 전투를 승리를 이끈 홍범도 같은 위대한 장군들을 배출하리라곤 범도는 물론 상상할 수 없었다.
나룻배가 강을 왕복하는 동안 남쪽 강변의 사람 수는 줄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과 함께 우당 이회영이 배로 올라왔을 때 범도는 그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조국의 독립 운동을 위해 온 몸을 헌신하는 그가 마치 딴 세상 사람 같았던 것이다.
가족들의 압록강 도하는 끝났다. 여전히 눈빛이 강렬한 그가 범도에게 다가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보자기였다. 보자기를 펼지던 범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이 강을 건널 독립 운동가들의 배 삯도 포함시켰소.”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약 값이 거기 있었다. 족히 6개월은 약을 매일 드실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어머니의 봄날도 기침을 잠재우며 따스하게 다가올 것이었다. 범도는 보자기를 가슴에 안으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었지만 범도는 귀가를 서둘렀다. 점점 빨라지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부터 뜀박질로 변했다. 집 가까이 오자 범도는 뛰는 것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숨을 고르던 범도가 갑자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들려야 할 기침 소리가 간데없이 주위가 고요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집 앞에 도달한 범도는 선뜻 방문을 열지 못했다. 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문잡이에 얹은 손이 움직이는 대신 범도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어머니”
범도의 입에서 나온 외마디 소리가 주위의 깊은 정적을 깨며 사방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