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것이 나의 타고난 장점이다. 공부가 밑바닥을 기어도, 시도 때도 없이 집 쌀통이 허연 바닥을 보여도 나는 여전히 당찬 16살 여고 2학년 학생이다. 도시락에 밥만 있고 반찬이 없어도 나는 기가 죽지 않는다. 대신 점심 시간이면 나는 어깨를 활짝 펴고 교실을 누빈다. 반찬 수거는 내 짝 지다 앞에선 어림도 없다. 기집애. 잘 사면 다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집에 차가 세 대나 된다는데. 그래서 뭐. 반찬 하나도 나눠 먹지 않는 주제에.
나는 아침마다 분주하다. 두 동생 아침 챙기랴, 점심 도시락 싸랴 내 머리 손질은 뒷전이다. 엄마는 매일 새벽이면 집을 나선다. 부지런하게 새벽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폐지는 딴 사람 몫이다. 엄마가 끄는 수레에 가득 쌓인 폐지가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린다.
아침밥을 먹고 남은 반찬으로 동생들 점심 도시락을 챙긴다. 남김없이 동생들 도시락을 채우면 내 도시락은 언제나 밥만 남는다. 걱정없다. 반 친구들 반찬이 내 것이니까. 4교시가 끝나면 나는 도시락 두껑을 들고 일어선다. 친구들 도시락에서 반찬을 몇 점 집어도 친구들은 군소리 없다. 어차피 남을 반찬이니 더 가져가라는 친구도 있다. 교실 한 바퀴를 돌면 도시락 두껑은 무거워진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 지다 도시락에 내 젓가락을 가져갔다가 무안을 당한 후론 지다 도시락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마치 칼 싸움 하듯 지다는 자기 젓가락으로 내 젓가락을 돌려치며 막았다. 내 반찬에는 신경 꺼. 까칠한 목소리를 상기하며 그날 오후 나는 책상 한 가운데를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지다와 나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뭐든지 이 선 넘어오기만 해 봐. 지다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흘겼다.
지다는 빈틈이 없었다. 점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처럼 그녀의 책상은 단정했다. 좀처럼 책이나 공책이 넘어오는 법이 없었다. 가끔 내 책이 경계선을 넘으면 지다는 연필로 책상을 탁탁 쳤다. 나는 얼른 넘어간 책을 내 쪽으로 잡아 당겼다. 내 눈은 칠판보다 책상의 경계선을 살피는 시간이 많았다. 칠판을 주시하든 않든 어차피 꼴찌였으니까 경계선을 살피는 마음이 편했다.
역시 지다도 인간이었다. 책을 잡은 손가락 두 개가 드디어 선을 넘었다. 잠시 혼동이 일었다. 나도 연필로 책상을 쳐? 그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넘어온 엄지 손가락을 연필 끝으로 내리쳤다. 뾰족한 연필심이 아닌 지우개가 달린 연필 끝이었다. 악, 하는 비명 소리에 교실의 모든 눈들이 우리를 향했다. 지다의 눈에 눈물이 한둘 맺혔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냉정했다. 넘어 왔잖아.
아무리 인지하신 선생님이시더라도 지다의 비명소리를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선생님의 엄한 명령대로 교실 앞으로 불려나와 한 쪽 구석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비명소리에 중단했던 역사 수업을 계속했다.
“ 세상에는 지역을 가르는 경계선이 많아. 우리나라 삼팔선도 그중 하나지. 미국에는 메이슨 딕슨 라인이라는 게 있어. 이 라인은 1760년대 영국 측량사인 찰스 메이슨과 제레미 딕슨이 메릴랜드의 영주 볼티모어와 펜실베니아의 영주 펜 사이의 식민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설정한 경계선이었지. 이 선은 19세기에는 노예가 있는 주와 없는 주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주와 메릴랜드주, 곧 미국의 남부와 북부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고 있지. 195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했지. 특히 남부 지방에서 심했는데 백인에게 자리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로 시작된 버스 보이콧 사건도 1955년 남부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에서 일어났지.”
점점 내려오는 손을 간신히 끌어 올리며 지다를 째려보았지만 지다의 눈길은 모범생답게 선생님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뉴욕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 여행을 워싱톤으로 가게 되었어. 백악관 견학은 물론이고 메릴랜드 주에 있는 글렌 에코 국립 공원이 워싱톤에서 멀지 않아 그곳도 자연스럽게 여행지로 잡혔지. 디즈니랜드와 매직 마운틴을 합져 놓은 공원이라 생각하면 돼. 물론 어린 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겠지. 수학 여행을 떠난 학생 중에는 흑인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글렌 에코 국립 공원으로 출발하기 전, 선생님이 그 흑인 학생을 불렀어. 그 국립 공원에 흑인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선생님이 받은 후였어. 방으로 돌아온 흑인 학생은 울음을 참지 못했지. 얼마나 기다려온 공원인데. 당연히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겠지. 이유를 안 룸메이트 백인 학생이 선생님 방으로 달려갔지. 저도 안 갑니다. 곧이어 백인 핵생들의 행렬이 선생님 방으로 줄줄이 이어졌어. 저도 안 가겠어요.”
잠시 말없이 서 계시던 선생님은 나와 반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짧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보다 어린 학생들이었어.”
그리고 나를 보시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남북을 가르던 메이슨 딕슨 라인은 수학 여행을 온 어린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경계선이 되지 못했지.소통을 차단하는 경계선이 어린 학생들의 우정을 가르지는 못한 거야.”
나는 선생님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지다의 고개도 어느 새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너희들 책상에 그어 놓은 선을 한 번 생각해 봐. 선이 있는 이상 나와 너만 있고 우리는 없는 거야.”
수업이 끝나면 점심 시간이었다. 무거운 공기가 감돌던 교실이 수업 종료 종소리와 함께 활기를 되찿았다. 마음은 무거워도 배는 고팠다. 도시락을 가방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지다도 천천히 도시락 두껑을 열었다.
내가 도시락 두껑을 들고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지다는 잘 튀긴 큼직한 소세지를 내 밥 위에 얹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내가 지다를 쳐다보자 지다는 이번에는 계란 말이를 내 밥 위로 가져갔다. 지다의 그런 행동이 믿을 수 없어 나는 다시 지다를 쳐다보았다.
“더 줄까?”
물어보는 지다의 표정이 진지했다. 내가 원하면 자기 반찬을 다 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돼지니?”
”아니었어?”
서로를 쳐다보며 지다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대기 시작했다. 책상의 경계선이 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