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자주 일어났다. 스토커처럼 나를 따라 다닌다고 생각하는 목없는 유령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뒤를 돌아보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목없는 유령 뿐 아니라 내 앞에 놓인 기요틴(단두대)으로 목이 들어가는 환상에 자주 사로잡히기도 했다. 기요틴의 무쇠 칼날을 지탱하고 있는 밧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졌다. 그런 환상에 시달릴 적마다 나는 내 목을 만졌고 목을 만지는 손에선 땀이 났다.
사람들의 가는 목이 기요틴의 무쇠 칼날에 두동강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잘린 목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데굴데굴 몇 바퀴를 굴렀다. 지난 한 달 동안 기요틴의 칼날에 목이 잘린 당원이 백 명이 넘었다. 나와 점심을 같이 하던 당원들의 수가 반쪽이 났다. 루이 16세를 참수하고 왕정을 침몰시킨 혁명의 기세는 그러나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루이 16세의 목숨은 그래도 살리자는 지롱드파의 주장은 처형 뿐이라는 자코뱅파의 주장에 밀렸다. 처형의 불길이 지롱드파로 옮겨 온 것은 루이 16세가 기요틴에서 목이 잘린 후였다. 루이 16세의 목을 내리쳤던 기요틴의 자리에 지롱드파 당원의 머리가 들어섰다. 우리 지롱드파는 숨기에 바빴고 자코뱅파는 우리를 찾기에 바빴다. 숨는 것보다 찾는 것이 더 쉬운 듯 지롱드파 당원이 포승을 당한 채 기요틴에 오르는 일은 하루를 거르지 않았다.
내가 파리를 떠나 노르망디로 온 것은 일주일 전이다. 나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나의 행보를 추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노르망디로 숨어든 도망자나 피신자로 간주할 것이다. 그것이 물론 지롱드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롱드파 당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것이 그들이 살 길이었다. 그러나 나는 노르망디로 숨어든 것이 아니었다. 한 여인을 찾기 위해서 나는 이곳 노르망디의 캉(Caen)에 왔다.
지롱드파의 아지트 살롱을 운영하던 롤랑 부인의 체포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나보다 당내 지위도 높고 나이도 다섯 살 많은 앙드레였다. 일주일 전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한 때 같은 길을 걷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자넨 정치를 모르는 군.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가 없다네. 우리같은 온건 혁명파마저 반혁명으로 몰리는 처지가 됐으니 프랑스에는 이제 반혁명으로 몰리지 않을 자가 없게 생겼어."
그의 말대로 프랑스 전체가 공포 속에 갇힌 상태였다. '인민의 벗'이란 신문을 창간한 마라(장 폴 마라)는 광기를 노출한 지 오래됐다. 가난한 사람에게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라고 계몽하던 그의 목소리는 살인마의 검은 소리로 변했다. 이제 그가 하는 일은 민중을 깨우치는 글을 쓰는 일이 아닌 참수할 인명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단두대에서 잘려나가는 사람들의 목이 늘어갈수록 그의 당내 지위는 올라갔다. 지롱드파 당원들의 수가 반토막이 났을 즈음 그는 당의 삼두마차에 타고 있었다.
"롤랑 부인의 살롱은 없어지겠군요."
"부인이 체포되기 전에 벌써 없어졌네. 거기에 가는 일이 날 잡아가쇼, 하는 일인데 누가 가겠나. 가만있자, 자네 고향이 노르망디라 그러지 않았나?"
"고향이랄 것도 없지요. 두 발로 걷기도 전에 파리로 올라왔으니까요."
"그럼, 그 여자를 알 리 없겠군."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며 그 여자라니요? 하고 물었다.
"샤를로트 코르데란 여잔데 노르망디 출신이라고 해서 혹시 자네가 알고 있나 싶었지."
코르데에 대해 그가 들려준 얘기는 나를 격분케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기 위해 지롱드파의 명단을 마라에게 건넬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명단에 자네나 나의 이름이 들어있을 지 누가 알겠나."
망설일 것도 없었다. 나는 그날로 노르망디 캉으로 내려왔다. 코르데란 여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코르데뿐 아니라 모든 지롱드파 당원들이 몸을 숨기고 있어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발과 내 눈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앙드레가 건네 준 사진 속 여자는 미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미인이라 한들 당원의 목숨을 파는 배신은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기요틴에 서기 전, 내 손이 기요틴이 되어 그녀의 목을 처단해야 한다. 1793년 7월 13일. 오늘도 내 눈은 여인들을 향한 채 노르망디 광장을 걷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린 곳을 지나칠 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노인들이 건물 앞 계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큰 인물을 잃었어."
"아주 막대한 손실이지. 마라를 죽인 사람이 이곳 출신이라잖아."
마라라는 이름 때문에 내가 발걸음을 멈추었을 것이다. 마라가 죽었다니. 행여 잘못 듣기라도 한 걸까.
"자네는 코르데란 여자를 알고 있나? 몰락한 귀족의 딸이었다는데. 나는 그녀는 커녕 그 가문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없네."
"몰락은 했어도 귀족인데 우리같은 평민이 알 리 있나? 오랫동안 연습한 게 틀림없어. 오른쪽 가슴을 부엌 칼로 정확히 찔렀다더군."
나는 다리가 풀려 더이상 서 있지 못하고 그들 옆 계단에 걸터 앉았다. 그러니까 마라는 죽었고 그를 살인한 사람이 코르데였다. 코르데의 손에 지롱드파의 명단이 들려져 있다는 소문을 마라가 접했다면 코르데는 마라의 집 앞에서 불청객으로 제지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코르데의 사진을 건네주던 앙드레를 떠올리는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광장 옆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바지 주머니 속에서 사진을 꺼내들었다.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견고한 얼굴. 코르데는 살인 현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도망치는 대신 마라의 오른쪽 가슴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피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머지않아 서게 될 기요틴 앞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나는 살고 그녀는 죽는다. 아니, 그녀는 영원히 산다. 내 가슴에. 당원들의 가슴 속에. 두 손을 모은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한참동안 멈춰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