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겨울 해가
자투리 볕 명주 보자기에
여기 저기 뒹구는
오늘을 주섬 주섬 주워 담아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하면
어슴프레한 방 한 가운데
억만 년의 바위되어
웅크리고 앉은 호피 할머니.
방문객이 묻는다.
“한국은 언제 다녀 오셨어요.”
크고 둥그런 눈의 할머니가
노는 어린 손주를 가리키며 대답한다
“거기 갈 돈 있으면, 그 돈 내 손주들에게나 주지.”
떠나온 뒤 다시 발디딘 적 없는 고국
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 곳
미군 남편 따라와
세컨드 메사에서 오십 수년
딸 낳고 아들 낳고,
그들이 또 애들을 낳고
증손주가 다섯.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메사 절벽의 붉은 속살을 움켜지고 오르는 바람에게도
소원을 엮어 하늘로 나르는 독수리 깃털에게도
샌프란시스코 산 봉우리의 카치나신들에게도
낯 익은 호피 할머니다.
주:
호피부족: 아리조나주 북 동부의 높은 절벽위에 위치한
수호신은 카치나신이고. 카치나신들은
호피부족이 필요한 것을 내려 준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