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야! 무 두 어개만 꺼내 올래?"
"왜 나만 시키는 거야!"
시린 손 호호 불며 집 모퉁이를 돌아간다.
무구덩이에 쌓인 눈을 화풀이로 걷어차고
머리만한 짚 뭉치를 뽑아낸 뒤 손을 뻗쳐 더듬거리는데
서늘한 허공만 손에 스친다.
“에이 씨이ㅡ”
머리를 들이미니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폐까지 전해지고
둥글 매끈한 무들이 서로가 자기 차례인양 손에 잡힌다.
무 윗동을 뚝, 잘라
싹둑싹둑 껍질을 베어내고 연두색 속살덩이를 심부름 값으로 준다.
사각사각 맑은 소리, 물 많고 단맛 깊은 시원한 겨울 무
숭숭 썬 것은 냄비에 깔아 생선을 졸 이고
가늘게 채를 썰어 들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볶다가
반은 덜어 국을 끓이고 나머지는 나물을 만드는 알뜰한 엄마의 손
그리고
뒤뜰에 묻은 항아리 김장김치를 곁들이니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오순도순 정겨운 저녁밥상!
반세기가 지난 지금,
김치 냉장고에 떠밀려
구덩이에 겨울 무와 땅에 묻던 김장독은 추억만 남기고
엄마의 손맛과 함께 세월 저 편으로 떠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