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하면, 아프리카에 있는 "사하라" 사막이나 몽고의 "고비" 사막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아리조나를 사막지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아리조나를 "사막주"라고 한다.
사막주 아리조나는 여름이 덥다. 아주 덥다. 더워도 습도가 낮아 끈적끈적한 여름의 동부나 북부보다 지내기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온도가 백십도 이상 올라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리를 바늘처럼 쿡쿡 쑤시는 것 같은 햇빛은 아무리 건조한 공기라 해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시원한 그늘을 찾거나 에어컨이 펑펑 돌아가는 실내에 머무는 것이 상책이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처음 아리조나에 이사와 TV 방송국 기후 아나운서가 내일 모레면 기후가 90도로 시원해진다는 말을 했을 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북부에서는 85도만 되어도 습기 때문에 더위를 견딜 수 없었는데 무려 90도인데도 시원하다니. 십 년 이상을 살다보니 그 보도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됐다.
사실 아리조나는 살기가 좋은 주다. 그랜드캐년을 앞장 세워 유명한 곳이 많고 덥다고 해도 사,오개월 정도의 더위만 참으면 나머지는 딴 주가 부러워할 정도로 날씨가 좋다. 나같이 나이 많은 노인네들이 북쪽에서 줄줄이 이곳으로 내려오는 이유를 그래서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리조나에는 자연재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태풍 없고, 지진도 없고, 집을 날려버리는 회오리 바람도 없다. 모래 바람이 있다고 해도 집을 날려버릴 정도는 아니고 그것도 일년이면 한 두 번으로 그친다. 다만 위험한 것은 산불인데 산불이야 어느 주에도 있으니 그것이 아리조나만의 문제라 할 수는 없다.
1965년 7월에 나는 아리조나를 처음 접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시골 촌 동네를 지나가는 듯한 피닉스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조그마한 도시였고 큰 빌딩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피닉스 다운타운에는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피닉스가 이 나라에서 제 5대인가 6대인가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놀랄만한 성장이고 변화다. 피닉스만 커진 게 아니라 우리 동포 사회도 커졌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할 정도로 한국 식당이 많아졌다. 홀로 있는 시간, 적적함이 몰려오면 거리낌 없이 전화 걸 친구도 생겼다.
이 나라 사람들이 사막주라 부르는 아리조나에서 내 마음은 사막처럼 황량하기는 커녕 언제나 촉촉하니 물기 마를 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