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때문이었다
그것은 너른 광야를 달려온
억센 강물같은 바람때문이었다
빈 가슴을 흐르던 강물은
이제 더이상 흐르지않아 마른 강이 되고
풀꽃이 무성했던 길섶에는 시든 갈대들뿐
이제는 외줄기 하얀 들길이 되어 산허리를 감돈다
아득하기만 하구나 잃어버린 세월
꿈을 잃은 방랑자는
광야를 떠도는 한마리 여윈 들개가 되어
여름이고 겨울이고 붉고 긴 혀를 내밀고 들판을 헤매여도
누구하나 더운 물 한모금 차가운 물 한대접 건네지 않았다
외로워지니 보이더라
바람을 타고 어디서 날아왔을까
2월의 잔설을 뚫고 이끼 낀 바위 틈에 서럽게 서서
찬바람에 몸을 떨며 오는 봄을 기다리는
너도바람꽃
잃어버린 방랑자의 꿈은
소복한 이웃 여인처럼 예쁘지 않아 아름다운
가녀린 하얀 풀꽃
너도바람꽃으로 피어났을까
* 너도바람꽃; 척박한 산 응달에서 서식하는 야생화, 2월이면 잔설을 뚫고나와 외줄기에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