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엔 동네 곳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젠 굴착기 소음뿐입니다."
아리조나주 피닉스 북부와 스카츠데일 일대 주택가에서 중산층 가족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부동산 투기 자본이 기성 주택을 매입해 허문 뒤 초호화 저택을 짓는 '재건축 붐'이 일면서, 정작 평범한 가정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집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피닉스 광역권(밸리)에서는 투자자들이 낡은 단독주택을 웃돈을 주고 사들여 부지로 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피닉스 북부에서 수십 년째 거주 중인 존 알트만 씨는 아버지가 물려준 집에서 살며 동네의 변화를 목격해왔다.
그는 "최근 1에이커 부지에 있는 방 3개짜리 주택이 89만 달러에 팔렸는데, 3주 뒤에 흔적도 없이 철거됐다"며 "멀쩡한 집값은 '0원'이고 오직 땅값만 90만 달러에 달하는 셈"이라고 혀를 찼다.
이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호화 저택들이다.
알트만 씨의 집 근처에도 460만 달러짜리 신축 저택 공사가 한창이다.
그는 "이런 집을 사려면 부부 합산 연 소득이 수십만 달러는 돼야 한다"며 "젊은 부부나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현상은 지역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학교다.
피닉스 북부 교육구들은 최근 학생 수 급감으로 인해 학교 문을 닫고 있다.
젊은 층이 떠나고 그 자리를 부유한 은퇴자나 자녀가 없는 고소득층이 채우면서, 동네가 마치 '선 시티(Sun City·노인 중심 은퇴 도시)'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전언이다.
알트만 씨는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지역 사회가 유지되는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끊겼다"고 우려했다.
부촌으로 꼽히는 스카츠데일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기존 거주자들마저 '집 갈아타기'를 포기하고 있다.
스카츠데일 지역 부동산 전문가인 라라 팔레스 씨는 "6년 전쯤 이곳에 들어온 가족들이 자녀 성장에 맞춰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 해도, 폭등한 가격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발이 묶인(locked in)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매물이 잠기고 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팔레스 씨는 "첫 집부터 넓은 단독주택이어야 한다는 과거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며 현실적인 눈높이 조정을 주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투자 광풍을 잠재울 정책적 제동 장치 없이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